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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6.27 16:16:3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우암의 생가지인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촌을 지나 영동으로 가는 국도변인 원동리 야산에 이르면 작은 무덤과 비석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비석 제원은 높이 86cm, 폭 41cm, 두께 17cm의 화강암이다.

비문에는 '贈 領議政 睡翁宋公(증영의정수옹송공) / 乳母憲菲之墓(유모헌비지묘) / 子姜수文墓在左(자강수문묘재좌) / 崇禎六十一秊 二月立(숭정육십일년이월입)'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해석하면 '영의정으로 증직받은 수용 송공의 유모 헌비의 묘소이다 / 그의 아들 강수문의 묘소는 좌측에 있다 / 숭정 61년 늦은 2월에 세우다' 정도가 된다.

전회에 우암 송시열의 부친이 송갑조(宋甲祚·1574~1628)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선조~인조 연간을 살면서 광해군대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한 수재형 인물이었다. 그러나 과거합격 직후 인목대비를 배알했다는 이유로 유적(儒籍)에서 제적됐다. 그러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는 강골의 겸비한 문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송응기(宋應期)로, 이윤경의 딸인 광주이씨를 아내로 맞았다. 그는 연약한 몸으로 다섯번째 아들인 송갑조를 출산한 후 몇년 지나지 않아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같은 환경에서 송갑조를 품에 안고 젖을 물려 키운 인물이 여종 헌비(憲菲)였다. 헌비는 본래 송응기 집의 노비는 아니었으나 광주이씨가 시집올 때 몸종으로 따라왔다.

송갑조는 헌비의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당시 헌비에게도 또래 아들 강수문이 있었으나 둘은 허물없지 자랐다. 그가 옥천으로 오자 헌비도 따라왔다. 그는 몸종 헌비가 세상을 뜨자 양지바른 곳에 제사지냈다.

옥천 이원에 세워져 있는 여종 헌비의 비.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송시열은 부친의 유훈을 받드는 의미에서 헌비의 묘에 비석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때가 숭정 61년 되는 해이나 여느 연도와 달리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숭정 61년(1689)은 이른바 기사환국이 일어난 해이다.

기사환국은 경신대출척으로 실각했던 남인이 1689년 원자를 정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을 몰아내고 집권한 사건을 말한다. 숙종은 오래도록 왕자를 가지지 못하다가 소의장씨가 아들을 낳자 서둘러 이를 원자로 임명하고 장씨를 희빈에 책봉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서인은 왕비 민씨(인현왕후)가 아직 젊으니 후일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숙종은 이러한 반대를 뿌리치고 장씨를 희빈에,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에 임명했다. 그러자 서인의 영수 송시열은 상소를 통해 중국의 예를 들어 다시 반대했다. 숙종은 이에 남인이 송시열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리자 그를 파직하고 제주도에 유배시켰다가 정읍에서 사약을 내렸다.

송시열은 이때 이미 자신이 살아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직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기 앞서 아버지 유훈을 받드는 의미에서 서둘러 헌비의 묘에 비석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록은 송시열의 마지막을 이렇게 적었다.

'아들 송기태가 말하기를, "국가에서 형벌을 쓸 때 현일(弦日)을 꺼리니, 마땅히 이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하니, 송시열이 들어 주지 아니하며 말하기를, "내가 병이 심하여 잠시를 기다릴 수 없으니, 명을 받는 것을 늦출 수 없다" 하고는 드디어 조용히 죽음에 나아가니, 이때 나이가 83세이다.'-<숙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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