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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9.06 16:53:5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안내면 답양리 채운산에 가산사(佳山寺)라는 절이 위치하고 있다.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창건자는 정확하지 않다.
 
가산사는 조선시대에는 비교적 작은 암자 규모를 유지되다 정조 대에는 일시적으로 폐사됐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 때 발간된 여지도서(1765년)는 가산사에 대해 '옥천군 북쪽 25리에 위치한다'고 적었다.
 
신경준도 '가람고'에서 거의 같은 내용을 적었다. 그러나 정조 때 발간된 범우고(梵宇攷)는 '북쪽 25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됐다(今廢)'라고 적었다.
 
사찰에 영정각이 존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가산사에는 영정각(도기념물 제 115호)이 존재하고 있다. 영정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의병을 이끌었던 영규대사와 조헌이다.
 
영정각이 건립된 직접적인 이유도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 조헌이 의병을 모집하여 군사훈련장으로 사용하였고, 영규대사 또한 연합작전을 펴면서 가산사를 승병의 훈련장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사실 관계가 약간 불명확한 면이 있다. 두 인물이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의·승병을 훈련시켰다면 청주에도 함께 입성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전회에도 밝혔지만 청주읍성 주변에 가장 먼저 진출한 의병은 영규대사로, 안심사를 거쳐 지금의 모충동 고개에 진을 쳤다. 이때가 1592년 7월 15일이다.
 
다음은 조헌으로 7월 4일 거병을 한 끝에 같은 달 29일 영규대사가 진을 치고 있는 모충동 고개에 합류했다. 연려실기술은 조헌 의병이 기병하던 모습을 "7월 4일에 깃발을 들고 북을 울리며 청주로 진군하니 그 군사가 1천7백명이었다"라고 적었다.
 
가산사도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앞서 밝힌대로 성하고 쇄함을 겪었다. 가산사 영정각은 가산사가 쇄하기 전인 조선 숙종 때 건립됐다. 당시 조정이 호국사찰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밀양 표충사의 영규대사 영정.

 
그러나 영규대사 영정은 현재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영정의 수가 한때 7개에 달했다. 우리고장 가산사 외에 충남 금산 종용사, 갑사 표충원, 경남 밀양 표충사, 충남 금산 보석사, 전남 대흥사 등에도 존재한다. 모두 호국의 이름으로 제작됐다.
 
충남 마곡사에도 봉안돼 있었으나 여러 해 전에 도난당했다. 정밀 모사를 하지 않는 한 영정의 얼굴 표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혼선이 야기되고 있다. 어떤 영정은 표정이 지극히 단정하고 어떤 곳의 영정은 투박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의 옥천 가산사 영정은 속칭 '원본 영정'이 아니다. 일설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영정을 반출해 갔기 때문에 새로 제작했다.
 
조선총독부 '관보'라는 것이 있다. 일제는 행정을 홍보하기 위해 1910년 8월부터 패망 때까지 관보를 발행했다. 관보를 보면 1930년 가산사의 주지는 林仁秀(12월 10일자)라는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1944년 2월 9일자에는 '山田義基'라는 일본인이 주지직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만약 영규대사 영정이 증발됐다면 이때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 시기에 왜 일본인이 국내 사찰 주지직을 수행했는가도 물음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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