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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구

(전)한국감정평가사협회장/감정평가사

'곡재아(曲在我)'란 말이 있다. 잘못이 내게 있음을 뜻한다. 반대 의미로 '곡재피(曲在彼)'란 말도 있다. 남에게 잘못이 있다는 말이다. 내 탓보다는 남 탓이 많은 것 같은 요즘이지만 '곡재피'보다 '곡재아'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세계직지문화협회(약칭 '세직문')가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直指)가 인류의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직지 세계화 사업을 추진·지원하는 단체다. 2005년 3월 창립되었으니 1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이상훈, 나기정, 곽동철 회장을 거쳐 5대 회장으로 김성수 회장이 취임했다. 필자도 부회장으로 함께하고 있다.

4월이 시작되는 날 김 회장이 취임 3개월의 소회를 SNS에 밝혔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는 협회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 직지의 가치를 알리는 사업이 턱없이 부족한 것에 대한 아쉬움, 무보수 명예직으로 책임과 의무만 가득한 회장의 자리가 역대 회장들이 시간적·정신적 봉사 외에는 더 큰 역할을 못 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세직문 핵심 사업에 집중하겠단 각오도 밝혔다. 협회 기금과 회원을 증대해 스스로 실력을 키워 자체 사업의 토대를 만들고, '직지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직지의 역사와 가치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는 데 주력하며, 관행적이었던 사업을 시대 흐름과 변화에 발맞춰 세직문 혁신의 첫해로 삼겠다 했다.

청주시민과 충북도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이 관심과 정성으로 '세직문' 회원이 되어주십사고 읍소했다. 예전과 달리 청주시장, 청주시의회, 청주고인쇄박물관장의 관심과 지원이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어 다행이라며 글을 맺었다. 부족한 것은 내 탓이고 고칠 테니 도와달라는 '곡재아(曲在我)'란 말이 생각났다.

필자는 세직문과 목적 등이 많이 다른 한국감정평가사협회(약칭 '감평협') 회장을 역임했다. '국민께 사랑받고 국가와 사회에 꼭 필요한 감정평가사'가 되고 싶어 노력했는데 참 어렵기만 했던 기억이다.

요즘 몇몇 감정평가사가 전세사기에 연루되었다는 언론보도로 국민으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감정평가사들이 공유하는 내부 커뮤니티에 여러 글이 올라오고 있다. 반성과 자책이 주를 이루지만, 현 제도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것이란 글도 있다. 필자도 공감했다.

감정평가사는 부동산시장에서 시장성, 원가성, 수익성을 분석하여 부동산 가치평가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부동산 가치평가기준이 실거래가격이 주(主)가 되면서, 감정평가사들은 부동산시장의 분석을 통한 가치판단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실거래가격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 여러 이유가 개입된다. 개입된 이유에 따라 어떤 것은 낮게, 어떤 것은 높게, 일관성 없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시장을 다각적으로 분석해서 거래 과정에 어떤 이유가 개입했는지를 찾아 제거하고, 적정한 거래가격을 찾아내는 것이 감정평가사의 역할인데, 그렇지 못하고 의뢰인이 요구하는 가격에 얽매이게 되는 것 같다고 자책한다. 평가제도도, 평가보수도 그렇게 맞춰져 있는 것 같다고 한숨짓는다.

많은 자료와 시장을 분석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평가보수가 보장돼야 하는데 감정평가사를 가격을 찍어내는 기계처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거래사례만 따라다니는 후진적인 평가방법에 의존하게 하는 한 전세사기 문제뿐만 아니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일갈한다. 극소수 감정평가사들의 일탈은 잘못된 것이지만 현 제도로는 개선하기 어렵다고 꼬집고 있다. '곡재피(曲在彼)' 같지만, 필자에게는 잘하고 싶으니 제도를 정비해 달라는 정직하고 바른말로 들린다.

세직문과 감평협만 그럴까? 많은 단체도 같은 고민이 있을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당국자들은 '곡재피(曲在彼)'보다는 곡재아(曲在我)'의 자세로 도와주었으면 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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