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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1.21 15:27:10
  • 최종수정2014.01.21 15:30:03

조혁연대기자

현재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의 묘는 일본 동경시내 아오야먀(靑山) 외국인 묘역과 진정사(眞淨寺) 경내, 그리고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3개의 무덤은 나름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1894년 3월 28일. 김옥균이 중국 상해에서 암살됐다는 소식이 일본열도에 전해지자 그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兪吉, 1835-1901)를 중심으로 '김씨장의위원회'가 구성돼 장례가 치뤄졌다.

그러나 아오야마 묘는 김옥균 시신이나 의복이 매장되지 않은 단순 '위패묘'이다. 대신 묘비명은 존재하고 있고, 이를 지은 사람은 유길준(兪吉濬,·1856∼1914)이다.

일본 도쿄 아오야마 외국인 묘역의 김옥균묘.

'오호, 비상한 재주를 품고 비상한 때를 만나 비상한 공이 없이 비상한 죽음이 있었다. 시체는 고굴에 돌아갔어도 사지가 찢기는 욕을 당하였구나.'-<아오야마 김옥균 묘지명 일부>

김옥균을 존경한 일본인 중에 카이군지(甲斐軍治)라는 사진사가 있다. 그는 1881년 김옥균을 처음 만난 이후 최후까지 정신·물질적으로 지원한 인물로, 자신이 죽을 경우 "김옥균 묘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김옥균의 묘를 동경 진정사에 조성한 인물이 바로 카이군지이다. 1927년 조선거류민단은 '청물어'(淸物語)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에 따르면 카이군지의 내연녀 오야부 마사코가 한밤중에 남대문 성곽을 넘어가 장대에 매달려 있는 김옥균은 얼굴을 한강물에 깨끗이 씻은 뒤 보통 짐인 것처럼 위장해 자기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오야부는 카이군지에게 보인 뒤 도쿄로 직행, 진정사에 묘소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한국사 근대사 산책'에서 이 내용을 인용한 바 있다. 그러나 강교수는 '그녀가 훔쳐온 김옥균 머리가 항아리에 담겨져 묻혔다는 주장과 머리는 이미 썩어 머리카락만 묻혔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부연했다.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김옥균의 한국 묘는 일본 진정사의 묘와 선이 닿아 있다. 1914년 부인 기계유씨가 사망하자 김옥균의 일본인 아들인 김영진(金英鎭·1876∼1947)은 아버지(김옥균)과 의붓어머니(기계유씨)의 합장묘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산리 김옥균 묘는 이른바 옷과 머리카락만 가지고 조성한 이른바 '의발묘'(衣髮墓)이다. 김영진은 1904년 한국으로 들어온 후 황해도 재령군수를 시작으로 아산·논산·보령군수 등을 지냈다. 김옥균의 묘가 연고가 없어 보이는 아산에 존재하는 것은 그가 아산군수로 재직할 때 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황현(黃玹·1855∼1910)은 매천야록에서 김옥균의 시신이 한 때 우리고장 옥천 청산(당시 청산군)에 묻혔다고 기술했다. 사실이라면 김옥균 연구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된다.

'김영진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김영진은 金玉均의 아들로 일본 부인이 낳았다. 김옥균이 처형된 후 그를 靑山郡에 매장하였는데, 이때 김영진이 와서 13년 만에 忌法會를 치르고, 또 그의 遺稿도 간행하였다.'(金英鎭自倭還 , 英鎭者玉均子, 倭婦所生也, 玉均伏法後, 葬靑山郡, 英鎭旣至, 追行十三年忌法會, 刊其遺稿, 英鎭自是連居外郡, 爲平南參書官·振威郡守, 以不法聞.)-<매천야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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