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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8.01 15:22:5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원나라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속국 고려의 임금을 자국영토 후미진 곳으로 귀양보내기도 했다. 고려 27대 임금인 충숙왕도 그런 신세가 됐다. 그는 원나라 조정의 미움을 사 수도 연경에서 1만5천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를 가야했다. 익재가 이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世事는 시끄러워 귀담을 수 없는데 / 다리 위에 말 멈추고 할 말을 잊었노라 /

언제나 태양은 내 마음 밝힐지 / 푸른 산 바라보며 눈물지누나 / 내 언제 믿음을 저버렸던가 / 이국에서 헤매어도 은혜는 아네 / 내 몸 날개 없어 날아가지 못하고 / 슬프다 나 홀로 애만 태우네.'-<익재난고 제 2권>

이처럼 익재는 고위 관료로서 뿐만 아니라 명문장을 남긴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

익재영정을 보관했던 보은탄부의 장산영당 모습.

원작격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을 제외한 나머지 8점의 익재영정을 그린 사람과 시기는 각각 다르다. 보은 탄부면 하장리 장산영당에 보관돼 있던 익재 영정은 한번 도난을 당한 후 현재는 국립청주박물관에 기탁·보관돼 있다.

자산영당 익재영정은 그의 직계후손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사균(李思鈞·1471∼1536)이 화공에 의뢰해 제작했다.

연산군 10년(1504) 이른바 폐비윤씨 복위운동이 일어났다. 연산군은 이 시기기에 이르러 생모 윤씨가 억울하게 폐비돼 사약을 받았음을 알고 그 억울함을 풀어주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 첫번째가 폐비 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복위시키고, 묘의 이름을 회릉(懷陵)으로 개칭하는 것이었다.

조정의 의견이 둘로 갈라졌다. 정광필, 성희안 등 대다수 대신들은 연산군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는 6년 전에 무오사화가 있었던 것을 의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회묘를 추숭하는 일이 의리에 어렵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하의 망극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니, 존숭하는 절목(節目)을 예조에서 의논하여 시행함이 편하겠습니다."-<연산군일기>

그러나 이사균, 이행(李行) 등 소수의 신하는 반대의견을 냈다. 무오사화의 여진이 남아었던 것을 감안하면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결단이었다.

"전하께서 애모하시는 정은 이르지 않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추숭하는 의식은 예절이 이미 지극하였으니 다시 더할 수 없을듯 합니다. 후궁의 일은 신들이 비록 알지는 못하나 선왕 때에 있은 일이니…."-<연산군일기>

광기로 치닫고 있던 연산군이 반대 의견을 낸 중신들을 가만히 놔둘리가 없었다. 이사균은 우리고장 보은, 이행은 충주로 귀양을 가야했다. 둘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공저자이기도 했다.

'부응교 이행은 장 60을 때려 충주에 부처하고, 교리 이자화는 장 60을 때려 아산에 부처하고, 부교리 권달수는 장 60을 때려 용궁에 부처하고, 수찬 박광영은 장 60을 때려 목천에 부처하고, 부수찬 이사균은 장 60을 때려 보은(報恩)에 부처하고…'-<연산군일기>

이사균은 우리고장 충주객사에서 병으로 졸했다. 그가 죽자 실록의 사관은 '문무를 겸비해서 대장부의 뜻과 기개을 지녔으며, 잗달고 번거로운 것은 싫어했다'(중종실록)라고 적었다. 그의 묘는 몇해전 보은 삼승면으로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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