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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7.23 15:41:5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사라진 북한 지명 중에 '덕원'(德源)이라는 곳이 있다. 지금의 문천시로 강원도 북부 동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잘 모르면 원산 북쪽을 생각하면 된다.

1674년 이른바 2차 예송 논쟁이 일어났다.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자 시어머니인 조대비(趙大妃·자의대비)가 얼마동안 상복을 입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때 남인은 1년(기년복), 송시열은 9개월(대공복)을 주장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이런 논쟁은 하찮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입장에서 보면 형(소현세자)을 잃은 효종을 장자(長者·맏아들)로 볼 것이냐, 차자(次者·둘째)로 볼 것이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논쟁이었다.

이른바 2차 예송 논쟁으로, 1차와 달리 송시열은 이 논쟁에서 패배했다. 그 결과 유배를 간 곳이 서두에 언급한 함경도 덕원이다.

세한도의 글을 묶어 편찬한 세한재유고.

그러나 우암은 이 유배 때 그리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동생 '時燾'(시도)와 時杰(시걸)이 그곳까지 따라왔기 때문이다.

'대체로 을묘년(1675, 숙종1) 1월에 진천(鎭川)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철령(鐵嶺)을 넘어 덕원(德源)에 이르러 함께 있다가, 4월에 성보(誠甫·송시도 지칭)는 일이 있어 집으로 돌아가고 수보(송시걸 지칭)만이 남아 나와 함께 지냈으니 귀양살이의 고통을 잊게 되었다.'-<송자대전 제 34권>

송시열의 아버지 송갑도는 5남2녀를 뒀다. 그중 송시열은 3째, 시도는 4째, 시걸은 5째로 출생했다. 인용문 중에 우리고장 진천이 등장한다. 우암이 왜 당시 진천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형제는 피를 나눈 사이지만 그렇다고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초기 태조 이성계의 아들들 사이에 1,2차 왕자의 난이 있었다.

근래들어서는 재벌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형제의 난이 종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현대가에서 그런 일이 있었고, 두산그룹에서도 동복(同腹)간의 다툼이 있었다.

시도가 형 우암을 생각하는 마음은 또 다른 기록에도 적혀 있다. 그가 전라도 익산군수로 있던 시절 우암은 생활이 곤궁했던 모양이다. 시도는 이런 형에게 식량을 전달했다.

'(…) 삼산(三山·우리고장 보은)의 흉년은 특히 더 심하여 집을 지키고 있는 비복(婢僕)까지 모두 모여서 관가의 녹을 먹기 때문에 모든 식구가 항상 주린 빛이 있습니다. 오직 익산(益山 익산 군수로 있던 송시도(宋時燾)가 다달이 내가 먹을 쌀과 콩을 보내옵니다.'-<송자대전 제 42권>

이 편짓글은 우암이 같은 서인인 이정백에 보낸 내용으로, 제 3자에게 형제애가 깊은 동생 시도를 자랑하고 있다. 편짓글에 '보은'이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다.

숙종은 노회한 임금이었다. 노론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을 자신의 권력 강화수단을 이용했다. 숙종 때 집중적으로 일어난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은 그 결과물이었다.

송시도는 당파싸움에서 노론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뒀으나 정계에 남아 있지 않고 우리고장 보은의 금적산 아래에 일경재(一敬齋)를 짓고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그 뒤 1689년 다시 형 우암이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따라갔다가 그곳에서 풍토병으로 죽었다. 역사상 이런 동생찾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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