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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3.27 17:42:5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조선 왕조는 대략 5백년간 존속됐다. 이 기간 동안 몇 명의 충청도관찰사가 파견됐을까. 금영공안, 공주감영읍지, 공산지, 충청도선생안 등의 사료에 관찰사 명단이 존재한다.

현재 금영공안과 공주감영읍지는 장서각, 충청도 선생안은 공주향교에 보관돼 있다. 충주감영 시절의 사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으나 이는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살펴본 결과, 조선시대에는 정확히 582명이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했다. 성씨와 본관별로 구분하면 전주이씨 30명, 파평윤씨 24명, 암동김씨 19명, 안동권씨 18명, 한산이씨 15명 등의 순으로 많았다.

이중 유명 인물로는 조선 전기의 경우 하륜, 정인지, 맹사성, 남지, 박팽년, 이세좌, 채수, 반석평, 노수신 등이 있다. 조선후기 인물로는 유근, 이안눌, 유백증, 김육, 박세당, 박중양이 등이 있다.

충청도관찰사는 재직 기간중 나름의 공과를 남겼다. 재해기간 중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된 안숭효(安崇孝··-1460)는 진휼사업과 함께 탐관오리를 숙청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과로로 순직했다. 그러자 세조가 이례적으로 부의를 했다.

'졸(卒)한 충청도관찰사 안숭효에게 쌀·콩 아울러 30석(石)과 종이 60권(卷)을 부의(賻儀)하고, 아울러 관곽(棺槨)을 하사(下賜)하였다.'-<세조실록>

조선전기의 충청도와 경상도 세곡(稅穀)의 충주에 집산됐으나 창고가 없어 노적된 곡식을 관리하고 서울 경창으로 수송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에 충청도관찰사 이세응(李世應·1473∼1528)은 경상감사 김안국과 의논해 충주에 가흥창을 세웠다.

'충청도 충주(忠州) 등의 절 기와를 헐어 옮겨서 가흥창(可興倉)을 지었다.'-<중종실록>

1728년 우리고장 청주에서 소론계 인물인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다. 자신들이 밀었던 경종이 갑자기 죽자 그에 따른 세력 위축을 우려, 봉기했다. 이때 권업(1669-1738) 은 호서안무사(일종의 지방특사)로 있었다.

그러나 영조는 그가 청주 사정을 잘 안다고 생각, 다시 충청도관찰사에 임명했다. 그는 10여년 전에 이미 충청도감찰사를 역임한 바가 있다.

'판부사 홍치중이 말하기를, "안무사 권업은 일찍이 방백을 지내어 도내(충청도 지칭)의 사정에 밝아서 진압하고 위무하는 재능이 이병태보다 낫습니다" 하자, 다시 권업을 충청도 관찰사로 삼았다.'-<영조실록>

충청감사 조명정(趙明鼎·1709-1779)은 재해 토지에 대해 면세를 요청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대신 일종의 권력남용 혐의로 해남으로 유배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조가 매우 사랑했던 신하였다.

'조명정의 관작을 도로 주었다. 하교하기를, "(…) 접때 복관(復官)하라는 명은 후원의 작환 때문에 반포하지 못하였으나, 상세히 헤아리면 제방에 해로운 것이 없으니, 다시 어찌하여 반드시 주저하겠는가· 전 판서 조명정은 특별히 해조를 시켜 그 관작을 도로 주게 하라."'-<정조실록>

이밖에 조병식(趙秉式·1832-1907)은 우리고장 동학도를 혹독하게 탄압하다 결국 경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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