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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1. 제겐 딸만 셋 있지요. 며칠 전에는 막내딸이 학교 숙제라며 자녀에 대한 아빠의 관심도를 체크하더군요. 자녀의 친구 이름을 몇이나 알고 있는가, 과제물 준비는 몇 번 해주었는가, 아이의 장래 희망이 무엇인가, 함께 놀아준 적이 얼마나 되는가 등을 체크했는데 종합평점 결과 최하 점수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난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생전 처음으로 막내딸과 손을 잡고 등굣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봄비가 제법 거칠게 내리니 나무들은 신록의 빛을 더욱 진하고 푸르게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로 빨강우산 파란우산 노란우산이 춤을 추듯 걸어갑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나도 저 무리들 속에서 합창하는 악동이 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막내딸의 친한 친구들은 누구인지, 좋아하는 음식과 즐겨하는 놀이와 장래의 꿈이 무엇인지 아이들의 관심사에 대해 공부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청소도 하고 가족 합창대회라도 열어야겠습니다. 부끄러운 아빠로 남지 말고 자랑스런 아빠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2. 신혼여행 이후 단 한 번도 제주도를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그간 제주도에는 올레길도 생기고 다채로운 박물이 속속 들어서면서 문화의 숲으로 탈바꿈했다지요. 게다가 세계 7대 자연경관 등록을 위해 노력이 한창이기 때문에 역사 문화 생태가 조화롭고 웰빙과 웰니스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멋진 섬을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해 보지 못했으니 그간 숨가쁜 일상,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는 오늘 아침에도 볼멘소리로 아빠노릇, 남편노릇 좀 하랍니다. 해외여행 시켜주겠다며 5년 전에 발급받은 가족 여권을 단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채 서랍에서 잠자고 있는데 연말이면 기한 만료라고 합니다. 해외는 그렇다 치고 온 가족이 제주도 여행이라도 다녀오잡니다. 부부간에 하루 30분씩만 이야기하잡니다. 1주일에 한번 집안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해보랍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인사라도 하며 살잡니다. 결혼기념일을 의미 있게 보내잡니다. 그러고 보니 제 아내가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남편이 돼 주지 못한 게 가슴 시리고 아픕니다. 아, 그래도 저는 결혼 16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길에 아내에게 키스를 해줬으니 빵점짜리 남편은 아닐 것입니다.

3. 얼마 전, 저는 난생 처음 어머니 손을 잡고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꽃구경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머니, 꽃구경 가는데 왜 나비넥타이를 해야 하지요·" "아들아,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해도 고운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그 꽃은 꽃이 아니란다. 내 마음부터 정갈해야만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이는 거란다. 세상에 대한, 꽃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라." 꿈속에서 어머니 손을 꼭 잡고 하얗게 흐드러진 찔레꽃 사이를 바람결에 흔들리듯 뛰어다녔습니다. 그곳에는 꽃도 사람도 바람도 모두가 하나의 숨결로 여울지고 그윽한 향기로 서로를 보듬으며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열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시집 오셨습니다. 아들 셋과 딸 하나, 모두 네 명의 우리 형제를 키우느라 뼛골 빠지게 일만하셨지요. 제 나이 스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30년 가까이 가장 노릇을 하셨네요. 이제는 곱고 예쁜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으로 가득하고 백발이 성성한데다 등허리까지 휘어 뒤태가 적막하고 쓸쓸할 뿐입니다. 돌이켜 보니 당신께서는 제대로 여물지 못한 자식 걱정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궂은 일 도맡아 했고 성인이 되어 결혼해서도 직장의 일, 가정의 일, 사회의 일, 심지어는 건강문제까지 챙기시느라 온 세월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 한 번도 자식된 도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사랑하고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저잣거리의 욕망만을 쫓는 비루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산과 들이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시리도록 푸른 계절에 가정과 이웃과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쪽빛 바다같은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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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