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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우리 어린 시절과 지금을 대비 시켜보면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가 59년 돼지띠인데 당시는 갈치, 도루묵 등과 같은 생선이 값 싼 음식이었다. 이에 비해 지금 건강 상 잘 안 먹는 육류는 명절과 아버님 생신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물론 과일과 야채도 싼 음식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싼 음식이 지금은 고급 음식이 되어 버렸고 당시 비싼 음식은 지금 그다지 비싸지 않으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하기사 무엇보다 우리 어린 시절 김밥은 얼마나 귀한 음식이었는가. 1년에 소풍갈 때나 맛 볼 수 있는 귀하고 귀한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동네 분식집에서 아주 싼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으니 이것 또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아무튼 음식은 그렇다 치고 당시와 지금을 대비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욕실과 화장실 아닌가 싶다. 당시는 화장실이 아니고 구멍만 뚫려있는 곳에 쪼그리고 앉아 대변을 보았는데 심한 경우 똥물이 튀어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어디 그 뿐 인가. 지금처럼 비데나 밑 닦는 화장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신문 종이나 달력 종이로 밑을 닦았다. 거기에 똥차가 오면 몇 통 퍼 갔는지 숫자 세었고 똥차 한 번 다녀가면 동네 여기저기 똥의 잔해가 널려 있기도 했다. 목욕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어느 집이든 욕조와 샤워기가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와 목욕하고 살지만 당시는 욕조 있는 집이 없었다. 따라서 목욕 한 번 하려면 동네 목욕탕엘 가야 했는데 목욕탕 가는 날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1년에 딱 두 번 설날과 추석이다. 이 날은 새벽부터 동네 목욕탕이 미어터졌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손에는 때밀이 수건이 들려있었고 완전히 때와 사생결단을 내고자 몸이 벌게 질 때 까지 때를 밀고 또 밀었다. 그저 간단히 샤워하고 나오면 되는데 당시는 일찍 나오면 본전 아깝다고 모두 한 시간 이상씩 죽치고 앉아 때를 밀고 또 밀었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지금 화장실에 욕조, 샤워기, 비데와 고급화장지를 두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간 얼마나 잘 살기 위해 몸부림 쳤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부모님들이 굶주린 배 움켜지고 자녀들 공부시킨 결과이며 당시 오죽하면 대학을 우골탑이라고까지 했겠는 가.

이렇게 자란 세대들이 일하고 일 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아무튼 옛날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는데 그건 그렇고 요즘 나처럼 욕조시설을 잘 활용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샤워도 자주 하지만 샤워 뿐 아니라 아침, 저녁으로 반신욕을 두, 세 번씩 한다. 한 번하면 30분 정도를 하는데 하고나면 몸에서 땀이 쭉 빠지면서 얼마나 개운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반신욕이나 목욕하고 나올 때 참 재미난 일이 하나 있다. 목욕하기 전에는 내 옷에서 냄새가 나는 지 전혀 모르겠는데 목욕을 마치고 나서 옷을 입을 때 보면 내 옷에서 안 좋은 냄새가 바로 느껴진다.

그래서 목욕 마치고 나면 속옷부터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목욕하기 전에는 내 옷에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오로지 깨끗하게 내 몸을 씻고 나왔을 때만 퀴퀴한 내 옷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참에 정치하시는 분들께 한마디 하고 싶다. 도무지 위정자들은 목욕을 안 한다.

목욕을 해야 자기 옷에서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목욕을 하질 않으니 이를 전혀 모른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민초들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 어디 정치권 뿐 일까. 작금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목사님들이 목욕할 생각을 전혀 안 하니 교회가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다.

썩어빠진 냄새가 진동하는 목사님들과 교회를 바라보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만 불쌍해 보일 뿐 이다. 위정자나리님 그리고 목사님, 제발 목욕 좀 하셔서 더러워 진 자신의 몸을 씻어내시고 그 결과 입고 계신 옷에서 악취 진동 좀 안 하게 해 주십시요. 사방 천지에 널려 있는 게 목욕 시설인데 왜 목욕 하실 생각을 전혀 안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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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