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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3.16 18:23:2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봄의 전령 매화향이 진하다. 북풍한설의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스스로가 진하고 강해졌으리라. 향기로움은 언 땅 밑에 움츠리고 있다가 나무뿌리로 스며들고 나무기둥을 타고 발산하니 꽃샘추위에도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3월의 지존이다. 하여, 우리는 매화향에 취하기 전에 그 내밀함과 강인함을 배워야한다. 핏빛장미의 아름다움에 빠지기 전에 그것을 지켜낸 가시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듯이 봄꽃이 품어내는 신생의 시간을 정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는 최근에 오사카의 이름 모를 골목길에서 봄의 전령 매화꽃의 속살을 훔쳐볼 수 있는 가슴 떨리는 시간을 보냈다. 어디 매화뿐이던가. 오사카 시내 곳곳을 순례하면서 그들의 삶과 문화, 전통과 현대, 자연과 디자인, 그리고 그들의 뒤태가 어떠한지 꼼꼼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행운아였다. 교토에서는 아기자기한 뒷골목 풍경을 가슴에 품고 나가하마에서는 오래된 골목길, 맑은 시냇물, 갓 구워낸 빵과 과자, 목젖을 알싸하게 하는 이 고장의 사케, 전통다다미방의 느낌과 일본식정원을 그대로 살린 미술관과 박물관, 햇살과 바람과 꽃과 새들까지 정겹고, 발닿는 곳, 눈길 마주하는 모든 것이 새로움에 기쁜 하루를 보냈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문화수도 도쿄를 지나 북해도의 오타루에서는 1910년대에 만들어 100년 넘게 보유해 온 운하와 1890년대에 들어섰던 60여동의 물류창고를 찻집, 레스토랑, 유리공방, 아트샵 등으로 바꿔 100년 전의 흘러간 향수를 되찾는 향수마케팅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일본을 발견하게 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그전까지는 이웃이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를 애써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니, 내 사전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이를 악물기도 했다. 그런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일본방문 계획이 생겼고 이런 저런 이유로 매년 한 차례씩 일본 투어를 해야 했다. 산골의 온천마을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특화시킨 유후인에서부터 도자기마을 아리타, 역사와 문명의 도시 나가사키, 특산품으로 차별화하고 있는 야마나시, 디자인도시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후쿠오카 등 일본의 풍경과 문화와 뒷골목의 속살을 볼 때마다 더 이상 미워할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에 젖었다.

지역마다 차별화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주민들이 머리 맞대고 협력하면서 체계적인 관광상품을 육성하며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생태와 문화와 전통과 디자인과 생활의 조화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그들의 열정도 나그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무엇보다도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의 행복과 조직의 미래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하고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나그네의 아슬아슬한 삶에 음표를 찍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하는 매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의 역량은 초미지급焦眉之急의 대지진과 잇따른 원전사고 속에서도 볼 수 있었다. 리히터 규모 9.0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괴력과 후쿠시마 원전에서 최근 며칠간 5번이나 크고 작은 폭발사고가 발생, 최악의 방사능 누출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억제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미덕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만약에, 우리에게 이와 똑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떠했을까. 약탈과 무질서와 분노와 이기적 행태로 얼룩지지 않았을까.

대지가 흔들리고 도시며 공장이며 산이며 들이며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 위기일발 속에서도 절제된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고난을 분연히 떨치고 활기를 되찾을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감한다. 그리하여 나는 소망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일본사회가 내게 보여준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처럼 사랑하는 나의 이웃 일본인들이 절망속에 새로운 꽃을 피우고 희망의 열매를 맺기를…. 일어나라. 북풍한설을 딛고 일어서라. 매화처럼 맑고 향기로운 자태를 뽐내라.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곡진한 마음으로 기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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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