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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사회평론가, 소설가

책이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할까· 한가로워 보이는 이 생각이 문득 모든 지식인들에게 절박한 물음으로 다가왔다.

지난 달 미국 온라인 판매기업 '아마존(Amazon)'이 새로운 전자책 독서기(e-book reader) '킨들 (Kindle) 2'를 선보였다. 아마존은 2007년에 킨들을 처음 내놓았는데, 성능이 향상된 기종인 킨들 2를 같은 값에 내놓은 것이다. 359 달러가 드는 이 독서기는 1500 권의 책들을 저장할 수 있고 한번 전지를 충전하면 2주 동안 쓸 수 있다. 화면이 뒤에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 잉크로 쓰인 것처럼 보이므로, 눈이 덜 피로하다.

이렇게 편리하고 효율적이므로, 전자책의 몫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종이 책의 몫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당장 종이 책이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킨들과 같은 전자책 독서기를 마련한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어서, 그들은 종이 책도 여전히 많이 산다.

문제는 앞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킨들이 아니라 휴대전화로 책을 읽으리라는 사실이다. 이미 '애플(Apple)'의 '아이폰(iPhone)은 그렇게 쓰일 수 있다. 모든 책들을 휴대전화로 읽을 수 있는 때는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이 일에선 '구글(Google)'이 앞장서고 있으며, 이미 많은 책들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책을 휴대전화로 읽을 터이고 따로 종이 책들을 사서 읽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태가 예상보다 빨리 오리라는 것을 가리키는 징후들 가운데 하나는 서점이 빠르게 사라지는 현상이다. 서점이 사라지는 현상은 보편적이니, 미국의 경우, 독립된 서점들의 수는 지난 15년 동안 4700 곳에서 1600 곳으로 줄어들었다. 서점은 사람과 책이 만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이 우리 둘레에서 사라지면, 종이 책을 구하기는 무척 번거로워진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게 되면, 며칠 걸리는 종이 책보다는 이내 받을 수 있는 전자책을 고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국 휴대전화와 같은 매체를 통해서 읽는 전자책이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종이 책은 실질적으로 사라지고, 기념품이나 선물로서 가치를 지닌 책들만이 종이 책으로 나올 것이다. 가장 중요하고 믿을 만한 지식들이 대부분 종이 책들에 담긴 지금 세상에서 종이 책들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논리는 그런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뚜렷이 가리킨다.

신문도 같은 길을 보다 빨리 걸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여러 징후들은 종이 신문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사라지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아마도 한 세대 뒤엔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뉴스들을 휴대전화를 통해서 읽을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신문의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줄일 것이다. 신문은 통신사들(newswires)이 제공하는 기사들을 자신들에게 맞는 형식으로 가공해서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대신 통신사들의 중요성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근년에 신문 시장은 줄어들었지만, 'AP'나 'Reuters'와 같은 주요 통신사들은 인원을 늘렸다.)

종이 책이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할까· 종이 책들이 읽혀지지 않고 그저 골동품으로 여겨지는 세상은 우리에겐 너무 낯설다. 책은 우리 삶의 본질적 요소다. 인류 문명은 정보를 몸밖에 저장할 수 있는 능력에서 결정적 도움을 입었고, 종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정보의 체외저장 수단이다. 종이와 인쇄술의 행복한 결합에서 나온 값싸고 읽기 좋은 책이 없었다면, 현대 문명은 훨씬 더디게 발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깊이 경외한다. 그런 사랑과 경외는 종이 책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 '춘추좌전'에 기록된 일화에서 우리는 그 점을 확인한다.

태사(太史)가 간책에 "최저가 그 임금을 시해했다"고 기록했는데 최저가 그를 죽였다. 그 아우가 태사가 되어 또한 마찬가지로 썼다.

이렇게 해서 죽은 이가 둘이었다. 그런데 그 아우가 또 그렇게 썼다. 이번엔 그냥 두었다. 남사씨가 태사들이 모두 죽었다는 말을 듣고 하려고 간책을 갖고 [제(齊)의 도성으로] 가다가 이미 기록되었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갔다.

기원전 6세기 춘추 시대 말기의 이 일화에서 우리는 책에 기록하는 일을 신성하게 여기는 전통이 이미 확립된 것을 확인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쓰인 죽간은 불에 쬐어 기름을 뺀 대나무조각으로 폭은 몇 센티미터에 지나지 않았고 길이는 20 내지 25 센티미터였다.

밑줄 긋고 여백에 소감을 적어가면서 읽고 나중엔 서가에 꽂아놓고서 손으로 쓰다듬고 눈길로 어루만지는 대신, 휴대전화로 내려받아 읽고 서버에 저장하는 일은 우리에겐 너무 이질적이다. 그런 세상이 빠르면 한 세기 안에 오리라는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에 서글픈 그늘을 드리운다.

당사자들의 생각은 물론 다르리라. 골동품이 된 종이 책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그렇게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도구를 통해서 지식을 얻은 사람들의 모습을 가벼운 경멸과 동정으로 떠올리리라. 발달된 기계로 편하고 효율적으로 농사 짓는 우리가 소가 끄는 쟁기로 농사를 짓던 선조들을 가벼운 경멸과 동정으로 떠올리듯.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에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받아들일 빈 구석을 가슴에 지닌 사람들이 있으리라. 손때 묻고 세월에 낡은 종이 책들을 보면서 우리가 종이 책에 대해 품은 사랑과 믿음을 떠올릴 사람들이, 그 낡은 종이 책들 덕분에 발달된 문명이 가능했음을 알고 고마워할 사람들이 있으리라. 하긴 어느 세대가 뒤에 올 세대들에게 그것을 넘는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제 강물은 흐르지 않는다.

때로 강물을 막아서면 억제(抑制)한 미련(未練)이 쌓여 소리치며 한 길로 흐르던 물결, 향방(向方)을 알지도 못한 채 나는 사랑했다.

기억(記憶)하라 강물의 대화(對話)를,강물의 시야(視野), 그 은은한 힘을.
이제 강물은 흐르지 않는다.

흐르지 않는 강은 마침내 마르고 강물은 스스로 목숨을 태워 땅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강은 자취를 감추고 강길을 따라 경사지(傾斜地)가 남으면 주위(周圍)의 몇 사람이 길을 가면서 잠깐 동안 목마름을 느낄 것이다.
상상했던 청춘(靑春)을, 그 사랑을. 그래도 언젠가는 모두 잊을 것이다.

이곳에 강이 있었던가

그러나 잠깐 쉬어보라

아직 사랑할 수 있는 강의 이름 빛나는 물소리를 들을 것이다.

종이 책이 사라진 세상의 풍경을 생각하면서, 마종기(馬鍾基)의 '연가(戀歌). 끝'을 뇌어본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렇게 시공을 뛰어넘어 공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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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