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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꽃보다 초록이다. 봄날의 산천은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꽃들의 현란함에 마음 시리지만 6월 초입의 초록은 형형색색 맑고 고운 향기와 새 잎의 기운과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맑은 햇살에 온 몸이 짜릿하다. 생명의 숲, 생명의 대자연과 함께 내 마음도 깨어 있으니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6월 초입의 초록이 청량하고 신선한 것은 생기발랄하고 에너지 충만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이 춤추는 악동이기 때문이다. 봄꽃은 제 다 진 것 같지만 초록의 그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봄꽃이 숨어 있다. 일찍 피고 일찍 지는 꽃보다 이렇게 늦게 피고 늦게 지며 세속에 오염되지 않는 순결한 꽃이 더 내 마음을 울린다. 나뭇잎도 제 색깔을 다 드러내기 위해 마지막 손질이 한창이다. 어린 아이의 섬섬옥수가 아니다. 예쁘고 곱고 아름다운 여인의 살결처럼, 풋풋하고 기운차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청년처럼 생기발랄하다. 춤추는 대지, 산과 들, 사람의 길과 짐승의 길, 하늘을 나는 새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과 그곳을 하릴없이 넘나드는 모든 생명이 일상속의 행복 바이러스다. 원초적인 생명력, 생의 의욕으로 충만케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계절에 담양 창평의 삼지내 마을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슬로시티로 알려져 있는 마을, 가사문학의 고향이자 대나무숲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때 묻지 않은 고장이라는 닉네임이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지만 그곳에 가면 아주 특별한 추억거리가 있을 것 같다는 설렘과 기대감은 어린 시절 소풍가던 소년처럼 몸과 마음이 호들갑이다.

슬로시티의 시작은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에서 당시 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파올로 사투르니니씨가 마을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느리게 살자"고 호소한데서 비롯되었다. 슬로시티는 슬로푸드, 웰빙과 웰니스, 슬로라이프의 연장선상에 있고 산업화 이후에 피폐화 되어가는 인간의 영혼을 맑게 하고 황폐화되어 가는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며 인간과 자연, 역사와 문화, 삶과 죽음 등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게 삶의 본질을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삼지내의 백미는 옛 돌담길이다. 조선 후기 전통적인 사대부 가옥이 여러 채 있지만 한옥이야 전주나 안동, 서울의 북촌에서도 볼 수 있으니 그다지 흥미로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돌과 논흙으로 쌓아올린 토석담이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갈 길 바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돌담길은 역사의 길, 지혜의 길, 생명의 길, 소통의 길, 상생의 길, 사랑의 길이다. 그리하여 돌담길은 추억의 길이고 오래된 미래며 탄생의 길이고 죽음의 길이다. 그러니 돌담길은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쉬는 생명의 곳간이다.

볏짚에 진흙을 섞은 뒤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올린 것이 돌담이다.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은, 어른은 까치발이나 깨금발을 띠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어깨 너머로 볼 수 있을만한 높이다. 돌담의 지붕은 암키와와 수키와로 마무리한다. 돌담 안에는 정겨운 한옥 한 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후덕하고 인심 많은 구릿빛 촌로가 곰방대 물고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영락없는 한폭의 풍경화다. 살아 있는 이 땅의 서정이다. 전통장류, 쌀엿, 한과, 국밥은 이곳의 특산품이자 부농의 꿈을 일구는 마을 사람들의 희망이다. 주말과 휴일에는 도심의 번잡한 일상을 뒤로하고 추억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우리 고장에도 슬로시티를 만들면 좋겠다. 초정약수와 운보의 집 일원, 청남대와 대청호 일대, 산성과 미원면 등 때 묻지 않고 역사 문화 생태 웰빙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문화원형을 만들고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로 새롭게 구성하며 생기발랄한 에너지로 충만케 하면 좋겠다.

돌담길을 바라보며 향기롭고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싶다. 툇마루에 앉아 책 한권 읽고 싶다. 온 가족이 오순도손 정겨운 이야기 나누고 싶다. 아, 내 마음도 초록 추억이 움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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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