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햇살 고운 봄날의 오후, 무심하게 길을 걷다 맨홀뚜껑에 내 시선이 멈추었다. 누추하고 고단한 도시의 삶, 미움과 증오만이 남아있는 회색도시에서 바동거리며 기력을 빼고 있을 즈음 어둡고 습한 맨홀뚜껑 속에서 노란 꽃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순간, 내 마음이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이기에 마음 빼앗기고 나만의 욕망에 상처받고 돌아오지 않을 추억에 가슴 시리던 나는 질긴 생명과 그 생명의 신비 앞에 무릎을 끌어야 했다.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낡고 버려진 발전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면서 4500만명이 관람하는 등 아트팩토리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된 것이다.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 MoMA, 프랑스 파리의 퐁피드센터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현대미술의 경향을 조망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테이트모던의 성공비결을 옛 건물의 효율적인 활용, 대중과 소통을 중시하는 전시, 접근성, 인적인프라의 효율적인 활용 등으로 꼽고 있다. 옛 건물 외벽을 그대로 활용하고 실내 공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모델링 하면서 전통과 현대, 건축과 미술, 엘리트와 민중, 하이테크와 하이터치의 조화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발전기가 있던 자리를 개조한 터빈홀Turbine hall은 높은 천장과 탁 트인 공간 배치 등으로 방문객 모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건물이 폐허화 되면서 도심공동화로 어려움을 겪던 이 지역을 런던의 새로운 문화아지트로 발전시켰다. 테이트모던 주변에는 크고 작은 갤러리와 쇼핑시설을 속속 들어서면서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는 시너지까지 얻을 수 있었다. 어디 이 뿐인가. 20년 넘게 테이트모던의 관장을 맡고 있는 니컬러스 세로타는 마티스, 피카소 등 유명작가들의 전시와 신진작가들의 모험정신 넘치는 작품을 수시로 선보이고 있으며 설치미술 프로젝트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 및 부대행사로 주목받고 있다.

화두를 안으로 돌려보자. 근대화 이후 청주의 산업동력은 단연 대농과 연초제조창이었다. 60~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의 근로자는 1만 여 명에 육박했으며 생계가족까지 더하면 수만 여 명이 대농과 연초제조창 덕에 먹고 살았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근대화와 산업화에서 미래세계로 가는 길목에 대농과 연초제조창의 쌍끌이가 있었고, 이곳에서 고단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새로운 꿈을 빚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청주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녹아 있고 아련한 추억의 곳간이 사장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을. 대농건물은 제다 허물어지고 이곳에 초고층 아파트 건립이 한창이며, 연초제조창 역시 황량하게 방치돼 있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시리게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숱한 외침과 분쟁, 그리고 근대화라는 숙명 속에서 우리 고유의 삶과 멋, 우리 것의 소중함을 쉽게 포기해야 했다. 역사가 왜곡되고 단절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잊혀지고 사라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꺼진 생명이 회생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는가. 잊혀져가고 사라지기 전에, 생명이 꺼져가기 전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보인다면 그것들을 살리고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지금 청주의 대농공장 부지와 옛 연초제조창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대농공장 부지 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대농교회 건물이다. 35년 전 상당산성을 모티브로 디자인하고 대리석으로 건축한 대농교회는 문화센터나 갤러리 공간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대농의 신화와 삶과 문화를 오롯이 보여주고 시민들이 향유하는 문화아지트로 새롭게 선보이면 좋겠다. 연초제조창의 활용방안을 놓고도 자치단체와 전문가, 시민사회와 소유주 등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10여 년째 방치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연초제초창의 옛 추억을 스토리화 하고 새로운 문화곳간으로 탄생시켜야 한다. 새로운 미래는 창조경영과 함께 문화로 꽃을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지는 꽃비 흩날리고 초록 물감질이 한창이다. 나도 햇빛에 파르르 빛나는 저 나뭇잎처럼 살고 싶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