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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수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외솔회 회장

'소가 우직하다'고 한다. '우직하다'는 '어리석고 고지식하다'라는 뜻인데, '고지식하다'는 뜻은 맞을지 모르나, '어리석다'는 뜻은 맞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오해에서 나온 소리고, 실제로는 정 반대다.

필자는 어릴 때 소와 같이 살았다. 우리 동네에는 소가 별로 없어 우리집 소가 유일하다시피 했다. 다 큰 소를 사다가 농사일도 시키고 새끼도 낳게 하여, 그 새끼를 친척들에게 분양하였다가, 그 소가 커서 또 새끼를 낳으면, 그 송아지는 키운 이에게 주고, 어미소를 팔아 이익금을 나누기도 했다.

우리집 소는 동네 논밭을 거의 혼자 갈기도 했다. 소가 땅을 갈거나 쓸어주면, 그 땅주인이 나중에 네 배로 우리 농사일을 해서 품삯을 갚았다. 그러니 소 한 마리는 큰 재산이었으며, 식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꼴 한 지게를 해다 놓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는 풀이 귀해서, 남의 땅에서는 함부로 풀을 벨 수 없었으므로, 어떤 때는 아주 먼 곳까지 가서 꼴을 베어왔다. 그것을 소는 밤새 되새김질을 하며 먹었다.

그래도 여름에는 싱싱한 풀로 소를 키울 수 있으니 다행이나, 겨울에는 마른 풀과 볏짚으로 여물을 해서 주어야 했는데, 여물을 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물은 풀이나 볏짚을 작두로 썰어서 만드는데, 한 사람이 손으로 먹이면, 다른 한 사람이 발로 밟아 써는 것이다. 풀이나 짚은 힘이 세야 잘라지기 때문에 내가 어릴 때에는 어른들이 주로 했고, 나는 국민학교 사학년때부터야 작두를 밟을 수 있었다. 여물을 추운 날씨에 네댓 가마니 정도 썰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구정물과 같이 아침, 저녁으로 끓여서 소에게 주었다.

소외양간은 으레 집안에 있었으므로, 소외양간 냄새를 일 년 내내 맡고, 소가 내는 갖가지 소리와 더불어 살았다. 소여물을 끓이시던 할머니가 때로는 "저 놈의 소까지 여자를 무시한다."시며, 부지깽이로 소머리를 사정없이 때릴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소가 치마를 입으신 할머니를 머리로 민다든지, 씩씩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소는 동네 어떤 집의 논을 갈면, 그 집에서 죽을 쒀서 주는데, 소가 그 논의 주인을 알고, 논가는 일을 끝내자 앞장서서 논의 주인집을 찾아 가는 일도 있었다. 소를 늙기 전에 파는 이유를 옛 분들은 '소가 사람같이 영악해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보고 그러신 것이다.

개나 돼지는 새끼를 여럿 낳아서 그런지, 하나 둘 떼어도 울고불고 하지 않는데. 소는 새끼를 떼면 한 달은 운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발로 땅을 파면서 운다. 어떤 때는 땅을 한 자나 깊이 파고, 그러다가 마침내 목이 쉬어 소리가 안 나올 때쯤 되어야 새끼 부르는 일을 끝낸다. 송아지와 어미소를 같이 끌고 갈 때는 어미소를 앞세우면 절대로 안 된다. 어미가 앞에 있으면 새끼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기 때문에 아주 어렵지만, 반대로 새끼를 앞세우면, 새끼는 어미를 의식하지 않고 가는데, 어미가 그 새끼를 잃어버릴까 저어하여 따라오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는 여름에 보통 들이나 산에 매어 놓고 풀을 뜯게 하는데, 늦어서 어두우면 무섭다고 울고, 주인이 소를 데리러 가면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옛날에 호랑이가 덤벼도 주인이 가랑이 사이에 들어가서 큰 소리로 응원을 하면 호랑이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주인이 그렇게 하지 않고 도망을 하면, 소가 호랑이를 죽이고 집에 뛰어와서 주인을 해친다는 말이 전해진다.

소가 어떤 곳은 절대로 지나가지 않으려 하는데, 알아보면 그 전에 소를 잡던 곳 즉 도살장인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미 땅을 메웠는데도 피 냄새를 맡아서 그런다는 것이다. 소가 다른 집으로 팔려 갈 때는 그러지 않는데, 도살장으로 갈 때에는 안 가려고 떼를 쓰고, 억지로 가도 도살장에 안 들어가려고 울고불고 하다가, 마침내 끌려들어가 모든 육신을 사람들을 위해 바치니, 정말 소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셈이다.

'소를 우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자만심에서 나온 것인데, 아무 욕심도 없이 살아가는 소들이 별 것도 아닌 일에 남을 속이고, 죽이고, 작은 욕심에 의리와 우정을 배반하고, 정쟁에 밤새는 줄 모르는 인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요즘 구제역이 창궐하여 소들이 집단으로 살처분 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 병이 어떻게 생겨서 빨리, 넓게 전염이 되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자연에 의하여 퍼진다기보다는 사람들의 이동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말이 없는 짐승이라고 예방하거나 고쳐 줄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가 병에 걸리면 동네 소들까지 모두 죽이니, 소들의 억울하고 비통한 마음이 이 세상에 가득하지는 않나 그런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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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