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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외솔 회장

나는 한국인으로서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주관적 판단도 아니고, 자존의 문제도 아니고, 자만의 산물도 아니다. 아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견해로서 하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이 이 좁은 한반도에 찾아와 둥지를 틀고, 오천 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것은 기록된 기간이고, 유물이나 유적으로 보아 수만 년도 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오랜 동안에 일시적인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은 적은 있으나, 대체적으로 독립하여 살았다. 한 때는 만주땅까지 우리의 영토인 적도 있고, 바이칼 호수 근처까지 진출한 적도 있지만, 한민족이 대부분은 한반도에 정착하여, 독립을 유지했으니, 대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은 고유하며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종교, 예술, 음식, 주거 등에서 특이하다. 노랫가락이나 판소리로 나타나는 음악이라든지, 시조나 가사로 이어져온 문학이라든지, 김치ㆍ막걸리ㆍ젓갈 등으로 대표되는 음식이라든지, 초가ㆍ구들로 된 주거 형태 등은 다른 민족들에게서는 잘 보이지 않은 우리들만의 것이다. 이런 전통을 맥맥히 이어온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

불교나 유교를 받아들여 우리 정서에 맞게 바꾸고, 경전을 연구하여 학문적으로도 앞장 설 수 있도록 만든 실력도 대단하다. 원효ㆍ의상대사를 비롯한 고승들이나, 퇴계ㆍ율곡과 같은 뛰어난 학자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든지, 첨성대를 세웠다든지, 아름다운 청자를 빚었다든지, 자랑스러운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오늘날 이 좁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3번째에 이르는 부자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종료된 지 50년이 채 안 되었고, 정치적으로도 많은 혼란이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거의 기적에 가깝다. 그렇게 되기까지 지도자들이나 경제인들의 탁월한 판단과 선도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우리 민족의 탁월한 역량과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더 뿌듯하게 여기는 것은 그 긴 기간, 그리고 많은 내ㆍ외적인 방해 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유의 말을 사용해왔다는 점이다. 세계에 육천 개에 이르는 언어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 우리 한국어는 쓰임의 크기가 14 위에 달하며, 어떤 언어보다도 다양한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높임법의 발달, 토씨의 다양함, 감각어의 세밀함, 시간성의 삼차원적 표현, 음운의 정교함 등은 다른 언어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첨가어인 우리 한국어를 소리, 문법, 의미에 조금의 어긋남이 없이 쓸 수 있는 문자는 한글밖에 없다. 오늘날 모든 언어생활이 기계화되어 가는데, 한자나 일본 가나같이 음소 문자가 아닌 글자를 쓰는 나라들이 고민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들이 남들보다 빠르게, 쉽게, 재미있게 손전화나 전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한글의 덕택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우리들의 말살이는 어떠한가. 쓸데없는 한자나, 외래어 혹은 외국어의 남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배워야 한다든지, 새로운 거리이름을 만드는데, 외국어를 써야 한다든지, 황당무계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는 없는가? ‘이름씨’보다는 ‘명사’가 좋고, ‘세모꼴’보다는 ‘삼각형’이 좋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한꺼번에 수많은 이들에게 말을 전달하는 텔레비전에서는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외래어, 외국어와 정제되지 않은 비어, 은어, 휴행어가 판친다. 예컨대 ‘생방송’이라고 하지 않고, ‘live’라고 써놓고, ‘연속극’ 대신 ‘드라마’, ‘소식망’이 아니고 ‘뉴스 네트워크’, ‘특집’이이 아니라 ‘스페셜’, ‘만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어느 날의 방송 순서를 보면, ‘르포, 굿 프렌즈, 하이라이트, 스포츠 타임, 이야기 쇼 락, 뉴스 투데이, 지구촌 리포트, 분홍 립스틱, 앙코르 스페셜, 로봇 다리,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라이프, 세계보고 베스트, 모닝 와이드, 무비 월드, 그린 세이버, 내 마음의 크레파스 스페셜, ’오! 마이 레이디, 스포츠 투나잇, 나이트 라인‘ 등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세 개의 방송사들의 하루치에서 뽑은 것이니, 일주일동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예가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이 중에는 아주 외국어를 많이 배웠어야만 알 수 있는 말들도 많은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방송인지 모르겠다.

위대한 민족은 하루 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위대한 국가도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의 겨레가 다음 세대에게 자랑할 만한 유산을 물려 주고, 그것을 또 끝없이 그들의 후손들에게 넘겨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말과 글을 아끼고,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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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