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운(자유기고가)의 인생 열두 고개’ - 용 고개

2009.03.25 18:26:13

인생 열두 고개의 다섯 번째 고개는 용 고개이다. 음력 3월의 고개이니 올해의 경우 양력으로는 3월 27일부터 4월 24일까지가 진월(辰月)인 ‘용’의 달에 속한다.

용은 열두 띠 중에서 유일하게 형체가 없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런 이유로 용의 해나 용의 달, 혹은 진(용)일 진시에 태어난 사람은 현실감각에 둔한 이상적인 사람이 많다고 역학자들은 말한다. 허풍도 심하고 주변 사람들이 어려운 일에 처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싶으면 자기는 능력도 없으면서 친구나 아는 사람을 들추어 당장 해결해 줄듯이 나서서 큰소리를 치기도 한단다. 호탕하고 낙천적인 성격에다 인정이 많아서 빚 받으러 갔다가 되레 쌀과 연탄을 사주고 오는 사람이 많다고도 한다.

용의 달인 3월은 만생명이 소생하고 신록과 꽃의 화려함은 있으나 아직 어리고 열매가 없는 때이다.

용은 그 모양새부터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가장 유연하고 긴 몸매에 잉어의 비늘 공작의 색깔, 사슴의 뿔 메기의 수염, 호랑이의 눈에 사자의 이빨, 독수리의 발톱에 여의주까지 물었으니 가히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동물임에 틀림이 없다.

또 하나의 특징은 암수가 따로 없으며 새끼도 낳지 않는다. 용은 조상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으로 용이 되는 것이다. 잉어나 독수리도 용이 될 수 있고 뱀이나 미꾸라지도 용이 될 수 있다. 큰 소(沼)나 강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라 개천에서도 용은 나올 수 있다. 가문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자기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성인군자도 될 수 있고 영웅도 부호도 될 수 있다는 암시를 준다.

이 시대에 견주면 스포츠나 예술계의 금메달리스트, 각계각층에서의 달인이나 일가를 이룬 이들을 ‘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마리의 용이 있은 뒤에는 수많은 이무기들의 피눈물이 있음을 기억해야하고 용이라 해서 항상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조화만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한다. 옛사람들은 용이 춘분에는 하늘에 오르고 추분 때엔 연못에서 사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용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지만 세상에 완전무결이란 없다. 용에게도 역린(逆鱗)이라는 게 있다는 것이다. 역린이란 ‘거꾸로 난 비늘’이란 뜻인데, “용은 순한 동물이어서 길만 잘 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턱 밑에 직경이 한 자 정도 되는 거꾸로 박힌 비늘, 곧 역린이 한 개 있다. 만약 그것에 닿게 되면 용은 노하여 틀림없이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이 역린이 있으므로 의견을 말할 때는 그것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비자(韓非子)는 적고 있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단점이 있고 왕이라도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상대의 단점이나 숨기고 싶은 것을 들춰서는 용은 커녕 목숨 부지도 어려울 것이다.

주역에서는 용의 달인 3월을 결단이나 결정 등 결말을 지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급히 서두르다가는 주변의 원망을 받거나 상대로부터 역공을 받을 염려가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이달은 만생명이 살아나고 돋아나고 자라나고 피어나는 좋은 계절이지만 ‘역린’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일엔 어려움도 많다(好事多魔)는 말이 있듯, 좋은 계절에도 곳곳에 지뢰가 묻혀있음을 상기하자.

내가 용이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남의 잘못을 덮어주고 상대가 가장 숨기고 싶은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려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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