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부채의 글씨는 봄바람. 새바람. 신바람의 머리글자를 쓴 것이다. 새해에는 이 세 바람을 일으켜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써 본 것이다.
봄바람은 모진 겨울바람을 밀어내고 갈아드는 훈훈한 바람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세상은 조상들의 피땀과 눈물의 거름으로 일궈낸, 유사 이래 가장 화려한 꽃밭이다. 지금 그 꽃들이 지려하고 있다.
꽃의 사명은 열매를 맺는 데 있다. 열매 속에는 그 아름답던 색깔만큼이나 갖가지 영양소를 담아야하고 그 향기도 익혀야 한다. 봄이 저절로 찾아온 것이 아니듯 열매를 충실히 하는 데도 하늘과 땅과 모든 생명들의 정성을 필요로 한다. 조상과 이웃들의 피 거름으로 피운 꽃에, 빛 좋고 영양 많은 열매를 맺는 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반드시 해내야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봄바람의 ‘봄’은 ‘보임’이나 ‘봄(見)’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봄에는 안보이던 수많은 풀 나무들이 새로 돋아나 자신들의 모양을 드러내 보이고, 사람은 눈으로 그들을 보며 봄을 느끼지 않는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가슴으로도 보고 때 맞춰 할 일을 해내는 ‘봄(觀)’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채에 쓰인 ‘봄’의 의미는 따스한 봄바람의 봄도 되지만, 애기를 보고 집을 본다는 의미의 ‘봄’바람도 일으켜 보자는 것이다. 애기를 본다는 것은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맞게 대처하고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미라는 것을, 한국인이라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잘 ‘봄’으로써 정확한 판단과 때에 맞는 바람을 일으켜, 선진국이라는 튼실한 열매를 맺어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할 역사적 사명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새바람은 묵은 것을 몰아내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보자는 것이다. 새바람에도 헌 것과 새것의 새바람도 있고, 새(鳥)가 일으키는 서로 돕는 바람도 있다. 새 중에서도 가장 멀리 난다는 기러기는, V자 비행을 하면서 선두기러기 날개바람으로 생기는 양력을 이용해 서로가 더 빠르고 오래 날 수 있단다. 서로가 서로를 띄워주는 이런 ‘새 바람’같은 새바람을 일으켜 보자는 것이다.
신바람도 마찬가지다. 신바람을 내자고 아무리 부추겨도 듣는 사람이 신바람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모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신바람은 용기와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 저절로 용솟음쳐 오른다. 이때의 신바람은 서로를 믿고 사는 믿을 신자(信)의 신바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불안하고 암울한 기류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또 그런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사는 날까지는 희망과 용기와 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요즘의 어지럼병에는 봄바람. 새바람. 신바람이 가장 좋은 약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바람은 자연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으켜야하는 바람이다. 기러기들이 서로 도와 보다 빨리 보다 먼 거리를 날 수 있듯이, 서로가 상대를 이해하고 서로를 띄워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봄. 새. 신바람을 일으켜 보자. 새해엔 꼭. 꼭. 꼭...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 없듯이 과거는 절대로 고칠 수 없는 것이다. 과거를 확실히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과거를 거름으로 삼아 오늘을 잘 사는 길 뿐이다. 거름은 깊이 묻어둬야지 겉으로 끄집어내 흔들어서는 냄새만 사납다. 수십 년 수백 년 전의 흑백사진 한 장으로 된장과 똥을 가리겠다는 무모함과, 집단이기주의의 머리띠와 주먹으로 봄바람에 황사를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이웃이 서로 돕고 위. 아래가 이해하고 남북이 손잡고 세계가 화합하는 마음의 봄바람을 일으킬 때, 지구가족은 모두가 흥겨운 신바람으로 축복의 열매를 함께 따먹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