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는 무형인 신(神)위주의 시대를 거쳐 물질문명의 시대를 구가해왔으나 21세기부터는 다시 무형인 정보와 감동의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들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데 모든 문명의 초점이 모여지리라는 게 많은 미래학자들의 예견이다.
계절로 치자면 봄여름이 옛날이었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가을겨울 같은 시대가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이기도 한 것이다.
오는10월23일은 24절기로 상강이다.
음력 9월의 중기로 가을의 마지막 달을 함께하는 기류이다. 상강이 관장하는 15일 간을 넘으면 겨울의 절기인 ‘입동’이 찾아들게 된다.
‘상강’이란 서리. 상(霜)자에 내릴. 강(降)자이니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라는 의미이다.
날씨는 쾌청하여 높고 맑은 하늘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지만, 밤에는 기온이 낮아져 낮 동안 발생한 수증기가 짙은 안개로 산하를 뒤덮기도 하고 땅 표면에서 엉켜 서리가 되어 내리기도 한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추와 고구마와 땅콩은 수확을 마쳐야 한다.
이때가 되면 모든 농작물의 수확이 절정을 이루고 과일 따기에도 일손이 바쁠 때이다. 주연은 단연 벼 타작이다. 벼는 주 식품으로 농작물의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풍년가가 가을 하늘을 채우려면 우선 쌀 풍년이 들어야 한다. 벼 풍년이 들어야 처녀 총각이 결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날씨도 좋고 병충해도 적었으며 태풍도 비켜가 ‘어거리풍년’ 이 들 것이란다. 어거리풍년이란 주곡과 잡곡과 과일 등 모든 농작물이 풍년임을 일컫는 말이다. 논에도 밭에도 산에도 모두가 풍년일색이다.
옛날 혼기를 넘긴 처녀 총각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어거리풍년을 맞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로. 상강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는 속담이 있다. 가을걷이에는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이다. 일손이 얼마나 필요하고 부족했으면 그리도 게을렀던 부지깽이까지 가만있질 못할까? 일 바빠 정신없는 농촌 돕기에 시간을 할애할 수만 있다면 심신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잘 지은 농사라도 거둬들이는 때를 맞추지 못하면 한 해의 피땀 흘린 농사가 허사가 되어버린다. 비나 서리를 맞거나 태풍을 맞아버리면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다. 조상들께서 때와 마무리가 소중하다고 당부하고 강조했던 이유이다.
상강을 인생역정에 비유하면 70대 초반에 해당할 것이다. 인생을 결산하고 빚을 갚을 때이며 알곡은 잘 보관하고 쭉정이와 잘못은 태워 없애버려야 할 때이다. 시대적으로도 구시대의 잘 못 된 유물들은 과감히 청산해야 할 때를 맞고 있음을 자각하자.
겨울잠에 들 벌레와 동물들의 겨울 집 찾는 모습에서 내가 지금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상강이라는 절기를 통해 생각해 봤으면 하는 아침이다.
“구월이라 계추 되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 언제 왔노/
벽공에 우는소리 찬이슬 재촉는다/ 만산에 풍엽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밑에 황국화는 추광을 자랑한다.“
<농가월령가 9월령>에서 늦가을의 정취가 아련히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