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시계가 아니라면 시간은 단 1초도 쉬지 않고 내닫는다. 초침이 돌고 분침이 돌면 시침도 따라 한 바퀴를 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가더라도 시계의 침들은 항상 시계 속에서 제자리를 맴돌 뿐이듯이, 우주적인 안목으로 보면 달과 지구와 태양이 도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다만 시계라는 것은 사람이 만든 기계로서 인간들끼리의 약속일 뿐 세상의 시계가 모두 다 멎는다 해도 세월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다.
시간의 구분은 여러 단위가 있으나 우리가 뚜렷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하루와 한 달, 그리고 일 년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뚜렷이 느낄 수 있는 것이 ‘하루’라는 역이다. 하루라는 역을 확실히 알면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정확하게 계산을 해 낼 수가 있다.
시간이 직선으로 무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므로, 돈다는 것은 곧 원(圓)을 의미하고 원은 그 크기는 달라도 각도는 다 같으므로 계산하기가 쉬우며 이 계산을 정확히 해 놓은 것이 역(易)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동양 역학에서는 하늘은 ‘자(子)’에서 열리고 땅은 ‘축(丑고)’에서 벌어지며 사람은 ‘인(寅)’에 서 태어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자. 축. 인 등은 시간의 단위일 뿐인데 각 시간마다 그 때와 의미를 붙인 것이 곧 지지(地支)라고 부르는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열 둘 이다. 이 시간의 흐름을 인생살이에 비유해 본 것이 이 글의 제목인 <인생 열두 고개>이다.
인생 열두 고개 중 네 번째 고개는 음력 2월로써, 올해의 경우 양력으로는 2월25일부터 3월 26일까지가 2월이지만 태양력을 기준한 역법으로는 양력 3월 5일부터 4월 4일까지가 음력 2월의 월건인 정묘월(丁卯月)에 속하게 된다.
역학공부를 하지 않은 독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음력은 일 년이(평년) 354일이고 양력은 365일의 차이를 맞추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산법이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인생 열두 고개의 네 번째 고개는 ‘토끼’ 고개이다.
토끼란 음력 2월에 붙여진 묘월(卯月)이라는 달의 별명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토끼 달’은 양력으로는 3/4일~4/4일까지를 뜻하므로 이 기간에 태어난 사람을 ‘묘월생’이라 말하는 것이다.(올해의 경우)
묘 월은 이제 본격적인 봄으로 접어드는 때이고, 하루에 비유하면 대략 오전 5시 반부터 7시 반까지의 해 뜨는 시간이며 인생 역정에 대입하면 10~20세까지의 피 끓는 청춘시절이다.
그래서 토끼띠나 묘 월생이나 묘일. 묘시 등에 태어난 사람은 토끼처럼 귀엽고 순발력이 탁월하며 사교성이 좋아, 회사로 치면 영업직이나 생산직. 또는 서무 등 그 어떤 일에도 자기 몫을 다하는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고 역학자들은 말한다.
주역에서는 묘 월을 ‘대장(大壯)’월이라 부른다.
‘대장’이란 땅을 뚫고 나온 새 싹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것을 의미하며 괘 이름으로는 ‘뇌천대장(雷天大壯)’이다.
땅속에서 풀과 나무와 잠자던 벌레들이 따스한 햇볕을 향해 땅위로 뚫고 나옴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묘년. 묘월. 묘일. 묘시 등에 태어났거나 묘 운을 만나면 만생명이 생기를 받아 솟아나고 돋아나고 뻗어나고 피어나듯 강력한 운을 탄다고 유추하는 것이다.
허나 능력이나 용기나 운만을 믿고 너무 지나친 행동을 하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이때가 비록 봄이지만 눈도 서리도 오는 때이다. 새로 돋아나는 싹들은 예쁘나 여리고 피 끓는 청소년들은 아름다우나 아직 경험이 부족한 탓이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토끼고개’를 오르내리는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끼고개에 태어나거나 넷째 고개를 맞는 사람들이 꼭 유념해야 할 일은 힘과 용기와 정열로만 일을 처리하려 하지 말고 새봄에 돋아나는 싹이나 벌레들처럼 부모와 선배님들의 경험을 거울삼아 더 배우고 다지고 겸손하여 허술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달을 잘 살아가는 토끼달의 미묘한 인생 넷째고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