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7일은 24절기로 대설 날이다.
‘소설’ 과 ‘동지’ 사이에 드는 절기로 이때가 되면 눈이 많이 내리는 때라하여 큰 대(大)자에 눈 설(雪)자를 절기 이름에 붙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봄. 여름. 가을은 꽃과 잎과 열매가 있어 보기도 좋고 풍성하지만, 겨울은 쓸쓸하고 몹시 추우니 가끔씩 내리는 눈마저 없다면 겨울을 참아 넘기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눈은 꽃도 잎도 비도 대신하는 계절의 제왕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의 겨울 이미지는 온 산과들을 하이얗게 뒤덮어버리고 스스로 장승이 되어 마을을 지키는 눈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글자가 하나도 없는 책- ‘눈사람 아저씨’와 함께...
이 책은 글자가 한 자도 없는 책이면서도 하늘과 땅만큼이나 서로 다른 생명인 소년과 눈사람 아저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눈사람 아저씨는 소년의 자상한 안내로 냉장고와 난로 등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소년은 하늘에 올라 눈사람아저씨의 눈으로 인간세상을 바라보았지요. 한마디의 말이나 한 자의 글자를 쓰지 않고도 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훌륭한 한 권의 책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니, 이는 눈의 참모습이 눈사람 아저씨로 승화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이나 물은 액체나 기체나 고체 등 어떤 물질로도 변신하여 그 때와 곳에 맞게 생명을 키워가는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비(雨)는 더울 때면 자신이 남을 씻어주고 먹이가 되어주지만 눈은 남의 아픔과 허물까지도 덮어주고 스스로가 온 세상을 밝고 깨끗하게 해준다.
대설의 큰 대(大)자는 크다는 의미도 있지만, “누구나‘ ’모든 사람‘ 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큰 정치’라 하면 모든 사람들을 잘 살게 하는 정치이고, ‘큰 사람’이라 함은 누구든지 존경할만한 사람을 이르는 것이 그 예(例)이다. 큰 대자는 한 일(一)자에 사람 인(人)자가 합해 된 회의문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설의 ‘큰 눈’도 깊은 뜻이 스며있는 것은 아닐까?
비가 내리다 기온이 낮아지면 눈이 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추워지면 잎을 다 떨어뜨리는 나무에게서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탐욕과 불필요한 지식을 버리면 눈송이처럼 가볍고 자유로우며 희어진다는 교훈을 주기위한 눈의 지혜는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겨울은 춥다. 춥다는 것은 어려움과 위기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어려울 때는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다 버려야한다. 버리고 위험을 넘어설 때 기회는 찾아들고 한 단계 성숙하게 되는 것이 변함없는 인생역정이다. 이 추운 겨울에 도를 넘는 탐욕과 망식(妄識)으로 난장판을 일삼는 이들의 가슴에 큰 함박눈이나 펑펑 쏟아져 내렸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글쎄 나만의 간절한 소망일까? 안타까워 곱씹으며 큰 눈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