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허리야

2025.05.28 16:15:16

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생전에 어머니는 "아이구, 허리야. 허리가 다락다락 에린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중년 이후에는 점점 심해졌고 나는 그런 말이 유독 큰아들인 내 앞에서만 더하시는 것 같아 듣기 싫었다.

어머니 가시고 세월이 흘러 내가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내 허리도 고장이 났다. 척추관협착증이 와서 몇 걸음을 옮기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다행히 명의를 만나 적합한 수술을 받고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회복되었다. 어머니는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인지라 수술은 엄두도 낼 수 없어 아픔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것인데 난 그것을 그리 헤아리지 못했다. 더욱이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평생을 허리와 고개로 행상하러 다니셨다. 시골 이 마을 저 마을로 무거운 잡화 상품과 물건값으로 받은 곡식 서너 말까지 머리에 이고 논둑길 밭둑길을 하루에도 몇십 리를 걸어 다니셨으니 그 허리가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젊은 시절에는 별 내색이 없었으나 중년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허리가 다락다락 에린다는 말이 신음처럼 나왔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허리를 써야만 하는 일이 많다. 텃밭 농사 중에 고구마도 허리를 많이 써야 한다. 하지만 나는 매년 꼭 심는다. 이유는 온 가족이 모여 김장도 하고 고구마도 캐는 즐거운 잔치를 위해서다. 또한 고구마가 그렇게 맛있다는 아들 손주가 있으니 안 심을 수가 없다. 그런데 갈수록 내게 고구마 농사가 힘에 부친다.

올해는 고구마를 심는 방법을 바꿨다. 보통은 두둑에 먼저 비닐을 덮고 꼬챙이로 고구마순을 3~40도로 찔러 끼워 넣는 방법으로 하는데 이렇게 하면 고구마가 크기가 들쑥날쑥해서 먹기에 적당하지 못하다. 그래서 전문 농사꾼처럼 고구마순을 먼저 심고 나중에 비닐을 씌운 후 고구마순 끝을 빼내는 방법을 택했다. 문제는 심는 방법을 바꾸니 허리를 쓰는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다. 일일이 고구마순을 빼낸 후 가운데 흰 띠가 있는 검정비닐을 모두 흙으로 덮어줘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무척 힘들었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해지기 전까지 작업을 마치기 위해 서두를수록 마음은 급하지만,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그 당시 어머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행상 나간 어머니는 어스름해질 무렵이면 머리에 인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허리와 고개가 아픈 것은 둘째 치고 서둘러 집에 오기 위해 마음은 숯덩이처럼 타셨다. 그 바람에 허리는 또 얼마나 망가지셨으며 그런 일이 어찌 한두 번 이었을까. 그렇게 닳을 대로 닳아진 허리를 병원 한 번 가 보지도 못했으면서 허리 아프다는 말씀을 돈이 두려워서 듣기 싫어한 나는 불효자식임이 틀림없다. 어머님 저는 용서를 구할 자격도 없습니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가 어머니 나이가 되었고 자식들이 그때 내 나이가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이 있어선지 자식 앞에서 아프다는 소리가 안 나온다. 아니 가능한 허리고 몸 어디고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옛날의 나처럼 자식이 듣기에 부담스러워할 것이니까.

오늘도 텃밭과 잔디밭에 허리 숙여 풀을 뽑았다. 한참 하고 나면 허리가 몹시 아프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으니 나 혼자 외친다. "아이구, 허리야. 허리가 다락다락 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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