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봄은 노란색으로 온다. 산에는 생강나무꽃이 피고 마을 주변에는 산수유가 피어난다. 둘 다 노란색 꽃을 피워 봄의 시작을 알린다.
3월 중순 구례 산동에 가면 마을마다 온통 노랗게 물들어 있다. 노란색은 우선 따스함을 느끼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 많은 사람이 산수유마을을 찾는 이유는 뭘까. 노란색에서 따스함을 느끼며 노란색이 주는 고향 같은 편안함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노랗게 시작한 봄날, 햇볕 좋은 우리 집 작은 언덕배기에 나는 무슨 보랏빛 꽃이 땅바닥에 수없이 핀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꽃이 아기 손톱만 할까, 너무 작아 지나치기 쉽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바로 꽃의 이름을 알아냈다. 봄까치꽃! 너무 예쁜 이름이어서 어떻게 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봄까치꽃은 의외로 여러 이름과 이름에 얽힌 얘기가 많다. 이 꽃은 이른 봄에 까치처럼 봄소식을 전한다고 해서 봄까치꽃으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상식적으로 글자 그대로 해석한 느낌이 들어 좀 석연치가 않다.
그보다는 이 꽃이 이른 봄에 피어 여름이 오기 전까지 핀다고 해서 '봄까지꽃'이라 불렀는데 사람들이 '봄까지'를 '봄까치'로 잘못 알아 자꾸 "봄까치", "봄까치" 하다 보니 봄까치꽃이 되었다고 한다. 이 경우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봄까지꽃보다는 봄까치꽃으로 좋게 편하게 부지불식간에 불렀을 것이다. 잘못 부른 이름이 본래 이름보다 더 재미있고 기억이 잘되어 본래 이름을 대체한 경우로 언어가 변화하는 단면까지 보여준다.
또 지금(地錦), 즉 땅 위의 비단이라는 뜻의 이름도 갖고 있다. 봄날, 이 꽃이 군락을 지어 죽 피어 있는 모습이 정말 비단을 쫙 깔아 놓은 듯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지금이란 이름은 한자어로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아 문헌상에만 있다.
그런데 봄까치꽃의 정식 이름은 의외로 큰개불알풀이다. 이 꽃은 개불알풀 종류의 하나로 열매 두 쪽이 짝을 이루는데 그 모양이 개의 불알을 닮았다고 하여 일본에서 붙인 이름이다. 우리는 그 일본 이름을 번역해서 '개불알풀'로 정해졌다고 한다. 모양에서 이름을 지었으니 정확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좀 민망하다. 모양보다는 꽃을 보는 기간에 초점을 맞추어 '봄까지꽃"이라 이름을 지은 걸 보면 우리는 그 앙증맞은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이 봄뿐이라는 아쉬움이 이름에 들어 있어 보다 인문학적 시각이 꽃에 투영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서양에서는 이 꽃이 피었을 때 가운데 암술을 양쪽에서 호위하는 듯 서 있는 두 개의 수술 모양이 위아래 진한 속눈썹을 가진 눈처럼 보였는지 '새의 눈' (bird's eye)이라 부른다.
학명에 들어있는 베로니카(Veronica)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눈물을 훔치며 예수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피땀을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준 여인, 성녀 베로니카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 꽃의 꽃 속을 들여다보면 나팔꽃처럼 꽃 속 깊은 곳에서 환한 빛이 방사형 선을 타고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것이 베로나카의 손수건에 나타났다는 예수의 얼굴을 환하게 밝혀주는 광배(光背)를 떠올리게 된다고 해서 베로니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봄까치꽃! 이름이 이쁜 꽃, 작아서 더욱 이쁜 꽃,
봄볕이 따사하게 내리는 날이면 나는 쭈그리고 앉아 그 신비한 보랏빛 꽃 속에 빠져 고개를 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