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찔레 향기에 아찔한 날, 괴산에서 청주 문의(文義)까지 오늘 참석하는 시화전행사에서 할 축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연습하며 당나귀처럼 봄길을 달렸다. 국도 따라 가는 길가에 노랗고 하얀 풀꽃들이며 흐드러지게 핀 작약에 눈이 호사스러웠다.
문의(文義)란 고장 이름이 의를 위하여 글을 쓴다는 뜻이라고 한다. 지명에 이런 인문학적 상상력이 투영되어 있는 곳에 가서 글(文)을 이야기한다는 게 무슨 매치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 행사에 초대받은 계기가 있다. 내 첫시집을 받아본 시인이 나를 기억하게 되고 문단모임에서 회원으로 서로 처음 얼굴을 보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가 주관하는 문학단체의 시화전행사를 위해 나한테 축사를 부탁한 것이다. 나는 그 제의를 받고 기분이 좋아 덜렁 승낙을 했더랬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듣는 자리에서 인사말이나 축사 등을 하려면 준비를 해야 하기에 미리 원고를 써서 보였더니 너무 마음에 든다 해서 또 기분이 좋았다 어린애처럼.
행사장에는 회원들이 애써 써 낸 작품들이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다양한 소재로 순수한 감정과 깊은 생각이 깔린 연륜이 묻어나는 글들이 두루두루 마음에 와 닿았다. 회원 대부분이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 문학적 모임을 자주 갖고 문학적인 교류와 사람냄새 나는 소통을 한다고 한다. 이런 순수 가치를 위한 모임이 5년째 이어지고 있다니 참 귀하고 아름답다. 오늘 행사는 회원과 회원들의 가족 40여명이 모여 시화작품을 감상하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인사말 공로패수여 축사 등을 하는 여느 행사와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은 가족이 함께 모였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쓰신 작품을 축하해 주기위해 아들 며느리가 오고 아내가 쓴 작품을 남편이 보러 오고 할아버지가 시를 써 내셨다고 손주들까지 와서 재롱을 피웠다. 어느 할아버지는 다른 집 손주가 귀여워 쌈지에서 용돈을 꺼내 주셨고 다른 집 아들은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주었다. 참으로 보기 좋고 따스한 풍경이었다.
뭐 사는 게 별거든가. 일상에서 쌓아가는 일들의 한 매듭을 이렇게 결산하고 그 의미를 함께 나누고 즐기면 행복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런 삶 속에서 좋은 일이 생기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실망하는 일이 생겼다가도 그 일로 인해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지난 주 ㅇㅇ해설사가 되기 위한 교육대상자 면접시험에 의외의 낙방을 해 자존심이 상하고 실망이 컸더랬다. 실력 아닌 다른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발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서 만약 그 시험에 합격되었다면 나는 또 조직에 매이는 생활을 해야 하고 별 수입도 되지 않으면서 몸만 바쁘고 좋아하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되는 늪 아닌 늪에 빠질 게 뻔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와이프도 떨어진 게 너무 잘됐다고 한다.
세상살이가 마음먹기 달렸고 생각하기 달렸음을 알면서도 이제까지 살아온 그 놈의 관성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으련다. 내 행복한데로 살겠다. 모든 좋은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소소하지만 마음을 그득히 채우는 일들로 일상을 채우고 싶다. 욕심을 부려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만족을 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고 싶다. 앞만 보지 말고 때때로 옆과 뒤를 돌아보자.
아침에 일어나 상쾌한 공기 속에 찔레꽃 향기가 얼마나 그윽한 지, 긴 밭이랑에 감자꽃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밭을 만드는 지, 무논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얼마나 즐거운 합창소리인지, 봄날 연둣빛 애기 손 같은 새 이파리가 얼마나 이쁘고 귀여운지, 깊은 밤 소쩍새 울음소리가 얼마나 가슴을 때리는 지, 틈나는 대로 어느 순간 가슴을 찌르는 것들을 글로 써보는 일이 얼마나 충만한 일인지,
찬찬히 돌아보고 느끼며 즐기는 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운 한 폭이 그림이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