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60대를 거쳐 70이 되었다. 60대에는 공자가 말한 '이순(耳順)', 즉 남이 말한 바에 대해 귀에 거슬림이 없다고 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찌 공자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순하게 들리기는커녕 즉각 반응해서 인간관계를 어렵게 만든 경우가 많았다. 나이 칠십이 된다 해도 공자의 경지에 오르기는 어림없을 것이니 나름 남한테 피해 안 주면서 내 좋아하는 바를 즐기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번 칠순에 아들, 며느리들이 아버님 환갑잔치도 변변히 못해드려서 가족여행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 뜻이 고맙고 기특하여 수락하였다. 여행은 장거리 장기간 여행이어서 내 체력이 감당할까 염려되었지만 오래전부터 계획해온 거라 어떻게든 주인공으로 역할을 해내기로 했다. 인원은 처제와 어린 조카들 까지 참여하여 12명이나 되었다. 일정은 미국 LA에서 출발하여 멕시코 서해안 관광지를 곳곳에 들리며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크루즈 여행이다. 비용도 만만찮지만 오랜만에 가족들이 함께 오랜 시간 여행을 한다는 설렘에 가기 전날 감기몸살 기운도 이겨냈다. 비행기를 10시간 반을 날아 LA에 도착해서 크루즈 배에 옮겨 탔다. 세계적인 유명 크루즈 P선사의 배는 무게 14만1천t에 높이가 17층, 길이가 300m로 3천600명의 승객과 1천500명의 종업원이 탈 수 있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배 안에는 모든 시설이 완벽할 정도로 훌륭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의식주가 필수이듯이 7일 동안 배안에서 먹고 자고 생활함이 다 가능해야 한다. 배는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침실, 식당, 운동시설, 수영장, 전문숍, 무도회장 등 잘 갖추어 있다. 이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 뷔페식당이다. 한 개 층이 모두 뷔페시설인데 거의 하루 종일 문을 열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식단이 미국식이긴 하나 한국식으로 야채 등을 골라먹으면 고기만 먹어 생기는 느끼함을 피할 수 있다. 아내가 가져간 고추장 볶음으로 만들어 먹은 비빔밥은 최고의 맛이었으니 내가 한국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무도회장이다. 매일 열리는 댄스타임은 참 볼만했다. 대부분 60대~80대 노년층인데 부부가 나와 스스럼없이 춤을 춘다. 뭐 남을 의식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이 손을 맞잡고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는 모습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그 중에서 어느 한 쌍이 매번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69세로 머리가 새카만 흑인이고 여자는 백발의 백인으로 74세라 한다. 흑과 백이 어울려 춤을 추는 셈이다. 그윽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며 가슴에는 사랑의 감정을 듬뿍 담아 나비가 춤을 추듯 우아하게 이리저리 스텝을 밟는다. 그 모습이 어찌 우아하고 아름다운지 모두들 넋을 잃고 바라보다 끝나면 우렁찬 박수소리로 화답한다. 부부의 사랑이 온 몸을 타고 흘러 몸짓으로 스텝으로 꽃 피는 것을 보노라면 참으로 부럽다. 아 사는 것은 이렇게 살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공자가 말씀한 대로 인생 칠십이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도(七十而從心所欲)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不踰矩)는 것인데 나이 칠십이 되어서 이것저것에 걸리지 않고 남의 눈치 살피지 않고 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으면 공자의 경지에 이른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인은 그들의 자유적이고 실용적인 문화에서 비롯되기도 하겠지만 식당을 가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든 웃는 얼굴로 예의 갖추면서도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고 분방하게 행동하며 그러면서도 질서를 우선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우리도 기본은 미국인 못지않지만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여러 면에서 조금은 더 배우고 나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육십대에서 칠순의 고개를 넘으니 나이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앞으로 여생이 길지 않음을 느끼나 그래도 겨울 지나면 봄은 오고 오는 봄은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