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잎 난다

2025.04.29 14:44:18

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새잎, 새순, 새싹만큼 설레는 말이 있을까.

봄이 오는 바람결에 서 있는 나무를 지나다 새로 돋아나는 움을 보면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자세를 낮추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나무는 겨우내 두꺼운 껍질로 꽁꽁 싸매 두었던 싹을 어느새 슬그머니 풀어 힘차게 밀어 올린다. 그리고 이내 어엿한 푸른 잎을 만들어 낸다. 그 새로운 잎을 만들어 내는 힘은 어디서 나오며 경이로운 변신은 무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그것은 '생명의 신비'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새잎은 봄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느 계절이든 조건이 맞으면 생명의 신비는 작동한다. 겨울을 나는 파, 마늘은 새순을 고이 숨겨 두었다가 봄에 힘차게 고개를 내민다. 가을에 노지에 심은 대파는 겨우내 혹독한 추위로 겉잎이 하얗게 말라 버리지만 그 잎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자기 몸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움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나는 하얗게 죽은 줄 알았던 대파 속에서 짙푸른 싹이 오롯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생명은 이렇게 쉽사리 끊어지지 않고, 이어 나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지난가을에는 울안 텃밭에 마늘을 심었다. 마늘을 수확해서 먹기도 하겠지만 그 푸른 마늘 싹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였다. 장날 씨 마늘 한 접을 사다가 어디에 심을까 고민하다 오래전 귀촌 초보 시절에 집을 판 주인이 텃밭 한 곳을 가리키며 "이곳은 땅이 축축해서 마늘이 잘되는 곳이다"라고 한 기억이 있어 땅이 좀 습한 곳을 택해서 심었다. 그래선지 마늘은 이내 싹이 나오고 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겨울나기가 걱정이었다. 부직포를 덮고 가장자리를 흙으로 메웠다. 폭설이 내리고 강추위가 몰아쳐 마늘이 과연 버틸까 했는데 꽃샘추위까지 지나고서 부직포를 걷었더니 마늘은 새싹처럼 푸르디푸른 잎을 자랑하듯 싱싱하였다. 어찌나 반갑고 기쁘든지 고맙기까지 하였다. 벼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큰다는데 내가 마늘밭을 자주 들여다본 마음을 마늘이 알아준 것일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에는 나무가 꽤 있는 편이다. 동네 사람들도 나무가 많다고 부러워한다. 올봄에도 묘목 몇 그루를 심었다. 묘목을 키워 좀 수형을 보려면 몇 년을 키워야 하지만 그것 따지기 전에 장날 묘목이 줄지어 있으면 자연스레 손이 간다. 자꾸 나무를 심는 이유는 나무를 좋아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나는 나무가 크는 모습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특히 새잎과 새순을 내어가며 연둣빛 어린잎이 푸른 잎으로 커가는 모습이 좋다. 마치 어린 손자 손녀가 자꾸자꾸 커가는 모습을 보듯이.

묘목이나 꽃씨를 사다가 어디에 심어서 어떻게 키워나갈까 하는 고민 아닌 고민이 즐겁다. 나무의 특성을 알아 크게 자라는 나무와 작은 키로 자라는 나무 등 각기 알맞은 곳을 선정해 전체적으로 나중에 나무가 성장했을 때의 그림을 그리며 심는다. 거기다 작은 꽃나무가 어울리는 곳과 꽃밭 등을 조성하여 나만의 정원을 상상하며 심고 수시로 다듬는 일이 순간순간 행복하다. 글을 읽고 쓰거나 시를 낭송하는 것도 나의 주요한 취미지만 나무와 꽃을 가꾸며 그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일만큼 마음 가득 차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새잎, 새순이 나는 봄은 '싱그러운 시작'이다. 새잎이 나는 나무는 어린 아기의 손과 방긋 웃는 얼굴을 보는 듯하다. 매일 아침 그들과 대하면 말은 없지만 말 없는 말을 듣는다. 매일 매일 다른 모습으로 새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는 기쁨은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다. 새잎, 새순, 새싹은 모두 새로움이다. 이러한 새로움으로 오늘도 나는 몸과 영혼을 새롭게 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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