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에서

2024.10.15 16:10:29

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올여름은 참으로 무덥고 지루했다. 7, 8월 내내 비는 거의 오지 않았고 태양은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를 쏟아 냈다. 그 기세는 9월 중순까지 이어졌으니 이제 한반도도 봄과 가을은 짧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면서 습하고 더운 아열대기후로 가는 것 같다. 화석연료에 기초해 발달한 인류문명이 이런 기후변화를 자초한 것으로 생각하면 엄정한 업보가 아닐 수 없다.

세계는 이러한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 특히 지구 온도 상승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탄소중립 등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들어선지라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아 답답하다. 그래도 인류는 온갖 재난을 극복하며 발달해온 지혜가 있기에 절망하기보다는 반드시 극복해 나가리라 믿는다.

그렇게 힘들었던 여름도 해는 자꾸 뜨고 져 어느덧 간간이 서늘한 냄새를 싣고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풀이 죽어간다. 이른 아침마다 나팔꽃은 진한 하늘색 나팔을 들어 부지런히 가을이 오고 있는 소리를 불어 대고 이에 뒤질세라 아침저녁 귀뚜라미 소리가 애잔하게 들려온다. 여름 뙤약볕에 그렇게 무성했던 감잎은 선선한 가을 기운에 윤기를 잃어가며 감잎 사이로 탐스러운 빨간 감을 드러내었다. 이제는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고 서정주 님의 「국화옆에서」를 읊으며 가을 국화의 향기에 젖어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가을은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천상의 자유를 누리며 떠 있는 흰 구름 같이 살아가라 하고, 툇마루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고 조는 고양이 같이 살아가도 된다고 일러 준다. 또 가을은 양지쪽 나무 의자에 앉아 진한 커피 한잔하면서 그간 미뤄두었던 책을 꺼내 밑줄 그어가며 보석 같은 글귀에 빠져보라 하며, 책을 읽다 읽다 배고프면 고구마를 쪄서 노오란 색깔로 김 나는 달디단 고구마 맛을 보라고 말해 준다. 그러고도 가을이 고프면 맘에 드는 사람을 불러 빈대떡 몇 장 부쳐 텁텁한 막걸릿잔을 기울이면서 주거니 받거니, 사람의 정을 느껴보라며 간간이 선선한 바람을 선물한다.

가을의 푹 빠져 단풍 속에서 헤매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절기의 변화는 어김없다. 아무리 이상 기후가 난리를 쳐도 이 지구가 스스로 돌고 또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 안에서 너무 덥다고 너무 춥다고 안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거대한 우주와 전체 자연 속에서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작고 미미한지.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그만 아니겠는가 싶다. 다만 그런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을 주는 이 우주 환경, 즉 하늘과 땅, 해와 달 그리고 별이며 나무와 꽃 등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가슴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여름 지나 가을이, 이 가을 지나면 곧 겨울이 온다. 지나고 보면 흐르는 시간이 얼마나 빠르고 야속한지 깨닫는다. 세월의 흐름이 피부에 와닿는 느낌에 흠칫 놀라며 문득 나의 졸시(拙詩) 한 편이 떠오른다.

'하루는 노인처럼 간다/ 일주일은 젊은이처럼 가고/ 한 달은 자전거 타고 간다/ 일 년은 고속도로로 달린다/ 십 년은 비행기 타고 간다/ 십 년이 많이도 지나갔다/ 나는 어디까지 왔을까/' (이하 중략)

시집 「몰래 보는 영화」의 시 「하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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