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小確幸)' 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작지만 확실하게느낄 수 있는 행복 또는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을 뜻한다. 이 말은 1990년 일본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 <랑게르 한스섬에서의 오후>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등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 정의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우리사회 뿐 아니라 세계적인 소비트랜드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득템'이란 말도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 '아이템을 얻다'라는 의미로 쓰인데서 비롯하였으며 생활 속에서 좋은 물건을 줍거나 얻었을 때에도 사용된다고 국어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소확행이나 득템 같은 말에서 나아가 요즘 젊은 세대는 긴 말을 짧은 말로 줄여 잘 사용한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노커피를 좋아하는 코리안을 '코리아노 빨빨이'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아'로, 한겨울에 롱패딩을 입고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얼죽아'로, 그래서 핫한 한류에 푹 빠진 광팬들이 불타는 금요일 '불금'을 '아아'로 식힌다고 말한다. 짧게 줄어든 말은 처음 접하면 무슨 뜻인가 하다가 원래의 말의 의미를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쁘고 빨리 변화하는 세상에서 의미를 빠르게 전달하려는 세태에서 오는 현상으로 그 뿌리는 모든 걸 '빨리빨리'하려는 한국문화의 영향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는 최근 여행에서 그런 소확행의 하나로 득템을 했다. 부안에 가면 내소사 대웅보전 전면에 꽃무늬 문살이 있다. 우리 조상 어느 목수의 정교한 솜씨로 수많은 연꽃과 해바라기, 국화꽃들이 세밀하고 질서정연하게 새겨있다. 오랜 세월 속에 닳아선지 채색은 없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나무의 본색이 드러나 나무 꽃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꽃으로 다가온다. 대웅보전이 아름다운 꽃밭으로 피어있는 듯하다.
이 꽃문을 살며시 열면 세 분의 부처님이 세상에 없는 온화한 미소로 중생을 반겨준다. 부처님 뒷벽면의 벽화는 부처님의 모습을 더 없이 존귀하고 외경스럽게 만들며 신비한 느낌까지 들어 절로 합장 경배하게 된다. 대웅보전 안 처마를 받치는 소 혓바닥 같은 공포는 화려한 여유가 넘친다. 쇠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건물의 기둥을 쓰다듬어 본다. 수 백 년의 세월이 나무의 결에 녹아있어 기둥에 하얀 분이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 누렇게 변색되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이렇게 큰 건물을 끄떡없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 100년을 못 가는데 나무로 지은 이 건물이 400년을 넘어 왔으니 나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
따사한 봄볕에 목련 꽃봉오리가 터졌다. 살랑대는 봄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풍경소리 들린다. 문득 정호승 시인의 「풍경 달다」가 생각 나 나직이 읊조린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시가 짧지만 간결하면서 함축적이어서 좋다.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풍경소리로 나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시라 더욱 시의 맛이 난다.
나는 맑고 깨끗한 풍경소리가 좋아 우리집 처마에 풍경을 달아 놓고 있다. 집은 인근 저수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꽤 세어서 풍경소리가 요란하다.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들어 마음에 안 들었었는데 기념품 매점에 들렸더니 마침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었다. 울려봤더니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든다. 맑고 고운 소리가 청아하기 이를 데 없는데다 울림이 깊어 긴 여운을 준다. 나는 주저 없이 사서 울려 본다. 뗑~~ 뗑~~ 하는 긴 울림이 내소사에서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 같아 마음에 쏙 들었다. 집에 와서 기존의 풍경을 떼고 새 풍경을 달았다. 봄바람이 확 불어오니 예의 그 울림이 나온다. 내 마음 깊은 그곳을 잔잔하고 아프게 울려준다. 아, 이 풍경을 참 잘 샀다. 우연히 좋은 득템을 해서 소확행에 빠진 셈이다. 이를 줄여 '득소'라고 줄여 말하면 어색한 비약일까. 딱딱한 내 어깨 위를 따사한 봄볕이 쉴 새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