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김진현 ㈜금진 대표이사

醫大 꿈꾸던 청년 창업성공 모델로 우뚝

2019.05.06 20:16:39

[충북일보] 독일의 생리학자 프리드리히 골츠의 실험에서 유래한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이라는 법칙이 있다. 끓는 물에 집어넣은 개구리는 바로 뛰쳐나오지만, 물을 서서히 데우는 찬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온도 변화를 인지하지 못해 결국 죽는다는 뜻이다. 올해 창업 20주년을 맞은 벽지·장판지 제조업체 ㈜금진의 김진현 대표이사는 현재 국내 중소기업을 이에 비유했다. 서서히 악화되는 경기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결국 도산에 직면한다는 경고다. 충북에서는 유일하게 지난해 중기부의 '존경받는 기업인 10인'에 선정된 김 대표를 만나 현재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을 들었다.
◇청주에 자리 잡은 계기는

"부천에서 8남매 중 7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선친께서는 농사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고 싶었다. 슈바이처를 존경했고 봉사활동을 좋아했다. 인천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인하대학교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다. 의대에 원서를 넣었지만 떨어졌고, 평소 수학과 화학 과목에 소질이 있는 것을 알고 계셨던 담임선생님께서 인하대에 원서를 써 넣어 주셨다. 인하대 화공과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뒤에도 의대 진학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 없었다. 인하대 휴학 후 시험을 또 쳤지만 결국 낙방했다. 화공과를 졸업한 덕에 1973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 입사했다. 이후 해외영업부장, 청주 제2공장장 등을 지냈다. 1998년 52살이 되던 해 IMF 사태가 터졌고 명예퇴직을 했다. 이후 '벽지사업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을 벌고 싶은 것보다도 '70살까지는 일을 하고 싶다' '직원들과 같이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곳저곳 공장을 찾아봤더니 옥산에 마침 마땅한 곳이 있어 자리를 잡았다. 그때부터 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금진이 자랑하는 회사 경쟁력은

"항상 얘기하는 것이 '금진의 직원들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점이다. 현장 직원들은 혁신활동을 하면서 최고의 품질과 최고의 가격경쟁력을 가진 제품을 만들어낸다. 직원들에게도 '당신들은 대기업을 가더라도 그 곳의 5% 내에 드는 인재'라고 말을 한다. 그 정도로 어느 회사보다 뛰어난 직원들이 금진의 경쟁력이다. 직원들이 노력하고 고생하는 만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직원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3년에 한 번씩 회사 비용 부담으로 직원 전 가족에게 해외여행 기회를 준다. 오는 11월에는 직원과 직원가족 200여 명이 3개 팀으로 나눠 하와이로 여행을 갈 계획이다. 세계 최고 경쟁력의 직원들 덕분에 기업 운영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 다만 본인이 영원히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유능한 직원을 전문경영인으로 선정해 운영을 맡길 계획이다. 직원들이 금진을 더 경쟁력 있고 강하고 올바른 기업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10% 정도 매출이 줄었다. 문제는 이 '10%'다. 금진 뿐 아니라 중소기업계는 해마다 10%든 일정정도든 매출이 줄어드는데, 위기의식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때문에 심각한 상황임에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급격한 변화가 아닌 차츰차츰 변화하는 상황에 무뎌진 것이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이 도산위기에 몰린 상황에도, 경기가 서서히 나빠지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상황과 간혹 비교되는 'IMF 사태'는 갑자기 터진 일이었다. 국민 모두가 체감했다. IMF처럼 순식간에 체감하지 못하면 만성이 된다. 중소기업인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체감이 안 되니까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기업들은 빨리 자각하고 자구·혁신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장에 꼭 필요한 지원책은

"중소기업에 대한 선입관이 있다. 바로 '환경이 열악하고 처우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재들이 오려고 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학벌이 아닌 능력위주로 채용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정관념 때문에 입사하려 하지 않는다. 인원채용이 가장 어려운 문제다. 입사를 하더라도 대기업 등에서 급여를 올려준다고 하면 이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돈이 다가 아니다'라는 것을 느낀 후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 지자체나 정부에서는 너무 깐깐한 규제사항으로 기업을 옥죄는 경우가 있다. '규제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로 인해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도 많다. 정부가 규제개혁에 소극적이라면, 충북만이라도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작은 일 하나라도 하려하면 규제에 가로막혀 일 년 이 년이 걸린다. 충북도 차원에서 조례를 만들어서라도 규제를 풀려는 노력을 해야 지역 중소기업이 살아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주 52시간제에 대한 생각은

"소득주도성장의 취지는 좋다. 다만 현실과 괴리가 있다. 기업체로서는 소득이 있어야 세금을 내고 임금을 올리는 등 '배분'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 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기업의 소득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배분을 할 수 있겠나. 결국은 기업도 살림이 팍팍해지고 근로자들의 주머니도 얇아지니, 봉사나 기부 등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에 대한 배려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방향설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금진은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 근로를 적용받게 된다. 입사하려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기계를 돌릴 수가 없다. 기계를 돌리지 못하면 업체 매출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또 근로시간이 줄면 근로자의 급여도 준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잔업을 해서 본인의 급여를 높인다. 직원들은 '왜 내가 일하고 싶다는데 못하게 하느냐' '애들 학원도 끊어야할 판'이라는 볼멘소리를 한다. 젊은 직원들은 더 일하고 싶어도 법에 가로막혀 할 수가 없다. 정부의 '워라밸'을 위한 취지는 좋지만 획일적인 적용은 문제가 있다. 임금수준이 높고 삶의 터전이 마련된 유럽 등 선진국 사례를 갑자기 국내 경제상황에 접목시키려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을 더 하고 싶은 근로자는 더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지역 기업육성 방향'에 대한 의견은

"신규 기업 유치도 좋지만 현재 운영 중인 기업을 더 살릴 필요가 있다. 소기업은 중기업으로, 중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키워야 한다. 신규 기업만 유치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기존 기업들은 인력 유출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고, 새로운 기업을 유치해서 키워내려면 시간이 걸린다. 또 창업 후 성공률은 5% 정도다. 창업을 활성화하고자 한다면, 기존 기업의 규모를 키워서 이 기업과 관련된 창업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 기업들이 쓰러지지 않고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끌어줘야 한다.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스케일 업'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예비창업자들에 대한 조언은

"사업을 하려는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난관과 위기가 닥쳤을 때 '왜 사업을 시작했는가' 초심을 떠올리면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인허가 문제와 자금문제는 필수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문제가 생겨도 재기할 수 있다는 의지와 열정을 갖고 사업을 지속해야 한다. 직원들이 애사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무엇이건 직원들에게 베풀고 공유해야 한다. 모든 직원이 힘들다면 서너 명이라도 모든 것을 터놓을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회사에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창업 후에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듯이 조언을 얻고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조직과 인사, 생산 등에 대한 기업문제에 대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사업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들어야 한다. 타 업체들과의 교류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호흡해야 한다. 배울 건 배우고 가르칠 건 가르치면서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큰 힘이 될 수 있다."

/ 대담=김동민 편집국장·정리=성홍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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