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염기동(55) 충북농협 본부장이 농협인의 길을 걸은 지 30년이 됐다. 염 본부장은 강산이 3번 변한 시간 동안 고향인 보은군(농협 보은군지부)에서 시작해 '충북 농촌경제의 수장'이 됐다. 오는 27일로 충북농협 본부장 취임 1년이 된다. 30년간 충북 도내에서, 외지에서 온갖 직위를 거치며 갖은 풍파를 겪었지만 올해 1년 처럼 다사다난한 해는 없었다. 연중 이어진 이상기온으로 농작물은 흙투성이가 됐고, 농업인의 가슴은 멍투성이가 됐다. 염 본부장은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농업 현장을 안방처럼 누볐다. 농업인을 가족처럼 보듬었다. 염 본부장을 만나 충북농협이 올해 지역 농업인·주민과 함께 호흡한 이야기와 내년 사업 추진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염기동 충북농협 본부장이 지난 8월 도내 수해 현장에서 복구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충북본부장 취임 1년, 농협인 30년을 맞은 소회는.
"고향인 보은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퇴임을 앞두고 충북에서 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향에서 시작과 끝을 보낼 수 있다는 데서 긍지가 생긴다. 행운이라고도 생각한다. 30년 간 농협에 몸 담으면서 약자로 볼 수 있는 농업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농업·농촌과 함께 성장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 최근 수습기간을 마무리하는 직원들에게 리더십과 관련한 책을 선물한 일이 있다. 입사하던 당시가 생각나 부러움이 생기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초심을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지금도 책상 서랍에 30년 된 주판이 있다. 입사할 때 산 주판이다. 입사 당시 '사수' 옆에 앉아서 주판 놓는 법을 배웠다. 당시만해도 모든 거래는 주판을 사용해 이뤄졌다. 사수는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주판 사용이 능숙했다. '부사수'인 본인은 대학 졸업 후 현장 근무에 투입됐던 터라 주판을 배우지 못했다. 3년 가량 주판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도 주판을 사용해서 덧셈은 할 수 있다. 책상 서랍의 주판을 볼 때마다 입행 당시가 떠오르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된다. 항상 배우고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2020년 충북 농업은 냉해, 과수화상병, 폭우피해 등 이슈가 많았다. 충북농협의 대처는.
"정말 가장 바쁜 한 해였다. 농업인들에겐 가장 힘든 한 해 였을 것이다. 지난 4월 도내 남부지방 등지서 냉해가 심각했다. 충북농협은 이에 대해 무이자 자금으로 175억 원을 지원했다. 자연재해는 또 닥쳤다. 8월 초 집중호우로 도내 1천800여 농가, 5천190㏊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무이자 재해자금으로 1천억 원을 지원했다. 또 식수와 구호물품, 성금 등으로 7천 600만 원, 양수기 등 45대의 관수장비를 지원했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식수와 식료품, 생필품을 지원했다. 재해대책상황실을 운영해 충북농협서 67회에 걸쳐 연인원 2천150명이 복구작업에 참여했다. 피해가 심각한 진천, 음성, 제천, 충주 지역에는 세탁차량도 지원했다. 수해 지역 농가를 돕기 위해 하나로마트와 충북농협 금요장터 등을 활용해 수해 지역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을 펼쳤다. 특히 재난지역 조합원 자녀 185명에게 1억여 원의 장학금을 지급해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했다. 폭우로 집이 떠내려간 제천 지역민을 만난 일이 있다.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닦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아직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하는 농경지와, 아물지 않은 농업인들을 보면서 지자체·정부는 물론 농협의 역할이 꾸준히 필요함을 실감한다. 과수화상병도 지역 농가의 시름을 깊게 했다. 충북농협은 이에 147억 원의 무이자 자금을 지원했다. 또 농협은행은 개인 당 20억 원 이내, 연 1.0%의 이율로 농업경영회생자금을 지원했다. 이와 함께 지자체협력사업과 농가소득증진자금 지원도 꾸준히 펼쳤다. 올해 지자체협력사업은 154건에 265억 원이 지원됐다. 이 금액은 지자체 142억 원, 농협 76억 원, 농업인 자부담 47억 원을 합한 금액이다. 이 사업은 농자재 등 시·군별로 지역 농업인들이 원하는 숙원을 맞춤형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농가소득증진자금은 65개 전 농축협에서 무이자로 830억 원을 지원했다. 지난해보다 55억 원 증가한 액수다. 충북농협은 앞으로도 지역 농가들의 피해와 요구사항을 면밀히 살펴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원을 이어나가겠다."
◇최근 AI확산에 대한 조처는.
"지난 7일 음성에서 AI가 발생한 이후 곳곳으로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충북농협은 지자체와 함께 이동통제초소와 거점소독시설의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1월 말부터 방역차량 41대와 방역인력 1천330명을 투입해 농협방제단을 운영하고 있다. 농협방제단은 지역 내 가금농장과 소하천에 대한 소독을 강화하고 있다. 방역용품 비축기지 관리를 통해 생석회 87t과 소독약 640㎏을 확보했다. 또 가금농가에 대한 예찰을 강화하고, 농가가 자가소독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방어할 수 있는 일차적인 수단이 마스크착용이듯이, AI확산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농가의 자가소독이다. 농가가 자발적으로 소독을 강화하면 AI확산을 방지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 간의 지원 내용과 향후 지원 방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각종 기념행사가 축소되면서 지역 화훼농가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이에 충북농협은 꽃 소비촉진 운동을 전개했다. 농협유통에서 지역 화훼농가의 꽃을 대량 구매해 판매하기도 했다. 우한 교민 등에게는 총 1억6천만 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지 못하면서 각종 농가에서 일손 부족을 호소했다. 이에 농가를 방문해 일손을 돕는 '생산적 일손봉사'에는 연인원 8천여 명이 참여했다. 또 농촌인력중개를 통해 지난해보다 2만여 명 증가한 10만여 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농가를 돕기 위한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고, 학교급식 중단으로 피해를 본 친환경 농가를 위해 '농산물 꾸러미'도 구매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혈액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충북농협 직원들의 자발적인 릴레이 참여로 300여 명이 헌혈에 동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지역 사회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충북농협은 농업인은 물론 모든 지역민을 위해 다각적인 지원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염기동 충북농협 본부장과 임직원들이 지난 4월 '학교급식용 친환경 쌀 소비촉진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농산물유통과 인연이 깊다.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농산물유통 관련 묘안이 있다면.
"지난 2019년 1월부터 연말 충북농협 본부장으로 부임하기 까지 농협충북유통 대표이사를 지냈다. 앞서 2017년은 가락공판장 사장, 2015년은 창동유통센터 지사장을 맡았다. 농가소득 증대와 농·축산물 생산·유통 대변화를 위해서는 올바른 유통혁신이 필요하다. 농협 내에 '올바른 유통위원회'를 출범해 싱크탱크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스마트한 농축산물 생산·유통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겠다. 또 도소매사업은 'e-하나로 당일 배송' 등을 활용한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하겠다. 농업인은 편하게 농사지어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착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내년 중점 추진 사항은.
"농협중앙회 차원에서 온라인 판매망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내년부터 성과는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충북농협은 이에 발맞춰 우선 유통 대변화를 통한 '판매농협'을 구현하고자 한다. 올해 1조7천900억 원의 농축산물을 판매했는데, 내년 목표는 이보다 600억 원(3.3%) 증가한 1조8천500억 원이다. '1농협 1로컬푸드'로 로컬푸드 직매장을 확대하겠다. 또 농산물이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수급안정사업 확대가 필요하다. 올해는 1만357t의 농산물을 거둬들여 수급 안정화를 위해 노력했다. 내년에는 이보다 1천43t(10%) 늘린 1만1천400t을 거둬들여 농산물의 수급안정을 꾀하겠다. 두번째로 소비트랜드 변화에 따른 '온라인 판매 활성화'다. 온라인 판매 활성화를 위해 '삼식이'를 중점 추진한다. 삼식이는 신선식품, 가정식, 간편식을 일컫는다. 농협몰과 쿠팡, 네이버스토어팜 등 대형쇼핑몰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온라인 도매시장을 개장하고 농협이 직접 '산지-온라인쇼핑몰'을 잇는 어시스트·마케터 역할을 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디지털 혁신'이다. 다양한 농협형 스마트팜 모델을 발굴·육성하고, 생산부터 판매까지 스마트팜 일관지원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디지털 혁신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농협 스마트출하회를 육성하고, 농협청년농부사관학교를 적극 활용하겠다. 농가가 '스마트한 농업'을 할 수 있도록 자율주행, 원격제어 등 스마트 농기계를 공급하겠다. 이와 함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NH농업인포털정보시스템을 개발·보급할 계획이다. 이 시스템을 활용해 각 농가에 영농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농업관련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농업·농가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염기동 충북농협 본부장과 관계자들이 지난 5월 과수화상병 농가를 방문해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지역 농업인과 충북도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코로나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어려운 속에서도 충북농협은 '돈 되는 농업, 돈 버는 농업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21년 신축년은 소의 해다. 소는 부의 상징이며 성실함과 우직함을 의미한다. 지역 농업인들이 농업을 통해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충북농협은 'DT(디지털)·UT(언택트)·OT(온타임)' 기조 아래 사업을 진행하겠다. 디지털 마인드로 사업을 추진해 도소매 방면에서 충북 농산물의 판로가 확대되도록 하겠다. 비대면 시대에도 현장에서 필요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겠다. 언제 어떻게 닥칠 지 모르는 농업 관련 재해에 대비해 직간접적인 지원을 준비하고 대처하겠다. 코로나 사태가 어서 마무리 돼 농업인들과 마스크를 벗고 만나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는 2021년이 되길 바란다."
/ 성홍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