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선 리즈마재단 회장
ⓒ김태훈기자
◇보은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를 초대해 국제음악제를 개최하게 된 동기는
"청주에서 자라며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11살 때부터 6~7년간 서울의 유명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다. 작은 도시의 학생들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큰 도시로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곳 충북에서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나 공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세계적 교육기관인 리즈마재단을 설립하게 된 동기는
'7살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수십 번 보면서 나는 장차 음악 선생님이 돼야겠다는 꿈을 꿨다. 또 11살에 '자이언츠'를 보고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리즈마재단 설립은 어린 시절의 꿈을 실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향은 자주 오는지. 또 고향에 오면 생각나는 스승이 있나
"한국은 1년에 한번 정도 온다. 지난해 10월에 오고 이번에 고향을 방문하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김문자 선생님이 가장 생각난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지금은 어디 사시는지 모르고 지내 너무 안타깝다."
◇리즈마재단이 세계적 교육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노력이 첫째다. 7살 때 음악 교사가 되고 싶었다면 이를 이루기 위해 50년간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달성하지 못할 일이 없다. 후배들에게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본인이 하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큰 꿈을 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공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돈, 명예 그런 것을 얻는 것이 성공이라고 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향해 최선을 다하고 또 그것을 성취했을 때 비로소 성공했다고 정의하고 싶다. 나는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현재 26년 전에 설립한 리즈마재단 산하 교육기관에 5개 캠퍼스가 있고 1천50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올해 첫 번째 썸머 페스티벌을 보은에서 개최했는데 앞으로도 매년 이곳에서 행사를 개최할 것인지
"썸머 페스티벌은 2004년 모스크바를 시작으로 프라하, 바르샤바, 파리, 이태리, 중국, 체코,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국 등 전 세계를 돌며 진행해왔다. 2018년 14회째를 내 고향인 충북 보은에서 열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이 행사가 앞으로 매년 보은에서 열리기를 기대한다."
◇리즈마재단의 분교를 서울이나 청주에 설립하실 의향은 있나
"좋은 아이디어다. 신중하게 생각해 기회가 주어진다면 설립을 적극 검토해보겠다."
◇뉴욕한인회 58년 사상 처음으로 여성으로 회장을 맡게 되셨는데 어려움은 없나
"여성이라서 특별히 어려움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여성이어서 더욱 섬세하고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큰일을 맡아 소임을 어떻게 잘 처리해야 할지 걱정이 있지만 최선을 다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회장에 당선되기까지 소송 등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는데 현재의 상황은
"전임 회장이 동포들의 유일한 재산인 5천만 달러 상당의 한인회관을 임원들도 모르게 부동산 업자에게 팔아 넘겨 회관이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2년여 간의 소송을 통해 회관을 되찾았는데 이번에는 전임 회장이 또 세금을 내지 않아 경매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또 소송을 벌였고 동포들이 모금을 통해 소송비를 마련하여 경매에 처한 회관을 되찾을 수 있었다. 두 번의 소송을 모두 승소하여 이제는 완전하게 회관을 되찾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동안 뉴욕한인회관을 되찾기 위해 함께 노력해준 교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앞으로 뉴욕한인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한인회는 봉사단체이지만 정치성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주류 사회 등 정치인 중에 친 한파를 많이 만들어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이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권익신장을 위해 우리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정치인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 현재 우리 동포 중에 하원 의원이 1명 있는데 이에 만족하지 말고 더 많은 정치인을 배출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50만 동포들이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상하 의원도 많이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민사 박물관은 개관 했나
"지난 3월 1일 개관식을 가졌다. 지난 시간 우리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해서 역사로 보존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후세들이 이곳에서 한국인의 뿌리를 찾고 정체성을 함양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뉴욕한인회관 6층에 170평 규모로 마련된 이 박물관에는 115년 동안의 한인 이민 역사가 초기 이민시대(1880~1940), 중기 이민시대(1940~1960), 대거 이민시대(1970~1990), 세대교체 및 변화의 시대(2000년~현재) 순서로 정리돼 있다. 이외 민속관과 이민 역사 전시물, 평화의 소녀상, 직지심체요절 등이 전시돼 있다. 이민사박물관은 뉴욕 시로부터 50만 달러를 지원 받았다. 뉴욕 시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 매년 감사를 받아야 하고 이 때문에 앞으로는 회관을 누구도 팔아넘길 수 없다. 이민사박물관 때문에 한인회관은 어엿한 공공건물이 된 것이다. 이것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는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꿈이 없는 사람, 둘째 꿈만 꾸는 사람, 셋째 꿈을 갖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이 세 부류 중에 꿈을 갖고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 누구도 성공 못할 이유가 없다. 여러분들의 성공 여부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50년간 치열하게 살아왔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의 50년간 여정이 어느 누구에겐가 또 다른 꿈이 되기를 희망한다."
/ 조무주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