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적인 사람이 되자

2024.11.24 14:55:35

안호종

프리랜서

1900년대에 이르며 천문학계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관측 기술이 발달하며 천문 관측 자료들은 기존의 천문학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천문학 연구에서 가장 큰 또 다른 문제는, 사진이라는 것이 현재처럼 디지털 신호를 변환해서 사진을 현상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망원경 뒤에 유리건판을 꽂고 사진을 찍어 나온 건판을 일일이 분석해야하는 노동집약적인 학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엔 여성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매우 쌌기 때문에, 하버드 대학의 천문대장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은, 대학을 갓 졸업한 여학생들을 채용해 건판을 분석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개 중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이가 있는데요. 바로 '헨리에타 스완 레빗'입니다.

레빗은 본인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유리건판을 하나하나 손과 눈을 이용해 분석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은하에서만 1천700개의 변광성(밝기가 변하는 별)을 발견했습니다. 그 변광성들을 연구하던 중, '밝기 변화의 주기가 긴 별일수록 원래 밝기가 더 밝고, 밝기가 어두운 별일수록 변광주기가 짧다'는 비례성을 밝혀냈습니다.

이 특성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지구에서 그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그 것을 가능하게 해 주어서인데요. 먼저, 별까지의 실제 거리를 알기 위해선, 별의 실제 밝기와, 겉으로 보이는 밝기(겉보기 등급)를 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겉보기등급은 이미 많이 오염되어 있는 정보라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레빗이 발견한 변광성의 밝기가 변하는 주기를 파악하는 법칙으로, 해당 별의 실제 밝기를 아는 것과의 유무와 상관없이 변광성의 주기를 찾아서, 레빗의 법칙에 대입해 해당 별까지의 실제 거리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후대에 들어서, 노벨상 수상 위원회가 우주의 스케일, 거리를 잴 수 있는 방법의 초석을 발견한 위대한 천문학자라며 상을 주려 했을 때는 안타깝게도 그녀가 이미 건강 악화로 사망한 후였습니다.

레빗이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 하버드 천문대장 피커링의 연구실에 있던 젊은 계산, 분석 업무를 하던 여성들을 '계산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컴퓨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그녀가 발견한 법칙을 건조하게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 라고 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녀에 대한 존중을 담아 '레빗의 법칙'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한 편, '컴퓨터' 레빗의 미들네임은 '스완'인데요, 백조자리에 있는 '백조자리 P' 변광성은 지구에서 약 5천100광년 떨어져 있는 극대거성으로서 우리 은하에서 가장 밝은 별 중 하나라고 합니다. 타고난 운명이란 것이 이런것인가 봅니다.

아무도 저런 어린, 학습되지 않은 '컴퓨터'가 우주 전체를 관측할 수 있는 통찰을 가진 큰 컴퓨터가 될지 몰랐을 것입니다. 필자는 지금 아프리카에 체류중입니다. 나무로 만든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를 밟고, 그 어떤 중장비의 도움 없이 건물을 짓는 '컴퓨터'들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질이 있는 컴퓨터들과 함께 또, 오랜 전쟁과 내전들로 본인이 어떤 '컴퓨터'의 자질이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이 더 기우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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