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뜻의 힘에 대하여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2022.05.18 16:30:59

안호종

프리랜서

중국, 아니 전 세계의 모든 문화권, 시대를 불문하고 역사학자들이 최고의 역사'서'로 꼽는 '책'에 대해 아시나요? 바로 「사기」입니다. 심지어 「사기」는 종이가 발명되기도 전에 쓴 '책'입니다. 어떻게 썼냐? 바로 '죽간'에 글을 썼습니다. 대나무를 평평하게 갈라 거기에 글을 써 엮어낸 것이 바로 '죽간'입니다. 죽간으로 총 130권 이상 조국의 역사에 대해 엮어내며 역사저술에 평생을 바친 이가 있습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달력, 천문, 기록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관(태사령)이었던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운명을 달리하며 아들 사마천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본인이 집필하고 있던 통일 한나라의 역사에 관한 책을 꼭 완성 해달라고 말입니다. 아버지의 관직을 그대로 이어받은 사마천은 태사령으로 재임하며 본인의 지위를 이용, 편하게 저작 활동과 사료 수집을 하며 지내던 중, 큰 이슈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른바 '이릉 변호' 사건입니다.

한나라의 장수 '이릉'은 북방 흉노와의 전쟁을 이끄는 장군이었습니다. 항전 도중 압도적인 군사력 차이에 사랑하는 부하들을 더 잃지 않기 위해 항복한 이릉이었는데요.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당시 한나라의 황제였던 무제(이하 한무제)는 이릉이 진정으로 투항했다 생각하고 이릉의 친족을 몰살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릉 장군의 됨됨이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사마천은 끝까지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모멸적인 형벌인 거세형을 받고 감옥에 투옥 됐습니다. 한편, 가족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이릉은 훗날 흉노 족장의 사위가 되어 오히려 한나라를 20년 이상 침공하며 한 무제의 큰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 거세형을 당하고 2년 후 옥에서 풀려난 사마천은 분을 삭이며 다시 붓을 잡았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거세형이라 함은 우리 조선시대의 '단발령'과 필적하는 사안이었습니다. 같은 처벌을 받는 이들은 당연히 자결을 하는 분위기였지만, 한나라의 천하 통일 과정에 대한 기록을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한 무제에 대한 복수를 위해 칼이 아닌 붓을 갈았던 것이었습니다.

마땅히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것보다 본인의, 아버지의 뜻과 의지를 위해 그 어떤 모멸감도 이겨내 보이는 초인적인 정신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존경받을 일임에 마땅합니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벼려낸 불후의 명서 「사기」의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하기에 그의 의지를 우리가 지금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거세형을 당한 탓에 사마천의 초상에는 수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초상을 보고 있노라면 '초연함' 그 이상의 느낌이 드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욱더 그 느낌이 확실해지실 것입니다.

그의 의지는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이 살고 싶으신가요?

물론 위대한 황제였지만, 사사로운 감정으로 충직한 신하와, 그 가족들까지 해친 폭군으로도 불리고 있는 남자와, 2000년 넘는 세월이 지나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최고의 역사가이자 역사서 집필가이며 그 그릇의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군자의 삶이 있습니다.

필자는 '한 사람의 천 걸음보다 천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는 말을 주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하곤 하는데요. '옳게 살려는 의지'가 모두에게 조금씩은 깃드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마천이 옥에서 풀려나고 지인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있는데요. 그 편지엔 이런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 …(전략)…이 책을 저술하여 명산에 감추어 두었다가 제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하여 성읍과 큰 도시에 유통하게 한다면 이전에 받은 치욕에 대한 질책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만 번을 도륙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할 수 있겠습니까?"

군자의 복수는 2000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