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지난 19일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증도가)는 물론 이규보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과 현존하지 않는 '상정예문' 모두 자신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라고 공개한 '증도가자(證道歌字)'로 인쇄했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지난 19일 청주대에서 열린 서지학회 추계 학술발표회에서 '증도가자와 동국이상국집'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증도가를 찍은 '증도가자'로 이규보(1168~1241)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과 현존하지 않는 '상정예문(詳定禮文)'을 인쇄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251년 간행된 현존본 동국이상국집 분사대장도감판(分司大藏都監版) 계통의 번각본을 분석한 결과, "(동국이상국집이)증도가의 글자와 같은 유형을 보이고 증도가의 글자와 크기가 같다"며 증도가와 동국이상국집이 같은 활자인 '증도가자'로 찍었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동국이상국집을 금속활자로 찍은 배경에 대해 "당시 권력자인 최이(崔怡)가 이규보가 병으로 눕자 그가 생존시 문집을 인쇄해 보이기 위해 책을 빨리 찍어내는 방법으로 기존 활자를 이용해 책의 간행을 독려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남 교수는 동국이상국집의 금속활자 인쇄에 대해 "동국이상국집 전집(前集) 41권을 활자로 먼저 인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그 근거로 "목판본의 특징을 갖고 있는 후집(後集) 12권과 비교하면 전집은 계선(界線)이 없고 10행 18자를 기본으로 하는 반면 후집은 계선이 혼입되고 12행 18~19자로 다르다"고 제시했다.
남 교수는 이와 함께 '주자(鑄字·금속활자)로 (상정예문)28부를 찍었다'는 동국이상국집 11권의 기록과 관련, "단지 책을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을 뿐 새롭게 활자를 만들었다는 내용은 없다"며 기존 '증도가자'로 상정예문을 인쇄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상정예문이 왕명에 따라 편찬된 국가 전례(典禮)에 관한 규정집으로 많은 수량이 필요 없어 목판보다 경제적인 활자로 찍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 교수는 상정예문과 동국이상국집의 원간본(금속활자)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소량의 인쇄와 급한 수요에 부응한 인쇄방식 때문으로 내다봤다.
남 교수는 "증도가를 찍은 '증도가자'가 상정예문과 동국이상국집 등을 인쇄했고 증도가의 활자를 유형별로 볼 때 '증도가자'가 증도가에 앞서 다른 책을 찍었을 수도 있다"며 "'증도가자'의 명칭을 그대로 써야 할지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 임장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