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보은(報恩)

2025.05.14 15:13:43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보은(報恩)은 삼한(三韓) 시대에는 마한(馬韓)지대에 속하였으나, 삼국(三國)시대에 들어와서는 백제(百濟)가 중부지방을 점유하고 신라(新羅)는 남방을 기점으로 이 지역까지 점차 북상하면서 양국의 국경지대가 되어 분쟁지가 되었다.

신라는 자비마립간(慈悲痲立干) 13년(서기 470년)에 백제를 견제하기 위하여 현 보은읍 어암리의 오정산(烏頂山)에 성을 쌓았는데 공사 기간이 3년이 걸렸다 하여 '삼년산성'이라 이름지었다. 지증왕(智證王) 3년(서기 502년)에 주현제(州縣制)를 실시하여 삼년산군(三年山郡)이라 칭하였는데 이는 삼년산성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공사기간 3년이라는 것이 시간적으로 긴 것인지 아니면 짧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시사성이 있는 말이라서 지명으로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지역에 오랫동안 전해져온 지명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옛 지명을 알 수 없게 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삼년산성을 '오정산(烏頂山)'에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오정산(烏頂山)'은 후대에 기록된 지명이어서 한자표기만 전하고 순수한 우리말 지명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표기된 한자와 일반적인 지명 요소와의 연관성으로 보아 '가마산, 가막산'으로 추정해 볼 수가 있으나 '보은(報恩)'이라는 지명과의 연관성은 찾을 수가 없다.

신라는 진흥왕(眞興王) 14년(서기 553년)에 북으로 영토를 넓혀 국경지대인 속리산에 법주사(法住寺)를 창건하여 국력(國力)을 과시하였다. 이후 왕권 강화 차원에서 한화(漢化)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덕왕(景德王) 16년(서기 757년)에 대대적인 지명 개명 작업을 추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모든 지명을 이두식 표기가 아닌 2글자로 이루어진 중국식 한자로 바꾸면서 삼년산군은 삼년군이 되었다. 따라서 삼년군은 삼국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는 국경지대를 지킨다는 역할도 줄어들고 공사 기간 3년이라는 시사성도 잊혀지면서 지형의 특성도 나타내지 못하는 지명이 되어 또 다시 개명해야 하는 필연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태조 23년(940년)에 지명의 개편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고려사>지리지에 의하면 "보령군(保令郡)은 원래 신라 삼년산군인데 경덕왕이 삼년군으로 고쳤고 고려 초기에 보령군(保齡郡)으로 고쳤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보령'의 '령(令, 齡)'은 두가지 한자가 혼용되어 쓰이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이 아니라 소리만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朝鮮) 시대에 접어들어 태종(太宗) 16년(서기 1416년)에 지명 개편을 하면서 충청우도의 보령현(保·縣-지금의 충남 보령)과 음이 서로 비슷하다 하여 보은(報恩)이라 고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태종실록(1416년 8월10일)>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이조(吏曹)에서 소리가 서로 비슷한 각 고을의 칭호를 고치도록 청하니 이에 청주(靑州)를 북청(北靑)이라 하고 양주(襄州)는 양양(襄陽)이라 하고 영산(寧山)은 예전 이름 그대로 천안(天安)이라 하고 보성(甫城)은 예전 이름 그대로 진보(眞寶)라 하고, 보천(甫川)은 예전 이름 그대로 예천(醴泉)이라 하고 횡천(橫川)은 횡성(橫城)이라 하고 보령(保令)은 보은(報恩)이라 하였다."

이 기록을 보면 여러 지역에서 지명에 '보'를 선호하여 비슷한 지명이 중복되어 고쳤는데 대부분 옛 지명으로 돌아가지만 전해지는 옛 지명이 없을 때는 좋은 이미지를 지닌 한자를 사용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따라서 '보은(報恩)'이라는 지명은 '삼년'이라는 지명으로 부르다가 '보은'으로 바꾸게 된 언어적 연관성이나 옛 지명과의 연계 고리를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한자가 기록 문자로 정착하면서 국경지대를 지키는 요새로서의 산성의 이미지를 지닌 '보(保)'이라는 한자로 만들어진 이름에 '3년'이라는 시한적 의미를 '령(齡)'이라는 한자로 표현하여 지명을 만들었다가 비슷한 음을 가진 지명을 고치는 과정에서 익숙하게 사용되는 한자어를 대응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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