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장승배기

2022.05.11 16:33:40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장승배기라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한자로는 '장승리(長承里)'로 표기하고 있다. '장승배기'라는 지명은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내암리, 옥천군 청성면 삼남리, 영동군 양산면 원당리 등에도 있으며 전국의 지명에서도 충남 청양군 정산면 송학리,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동, 충남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 경북 성주군 초전면 용봉리, 강원도 영월군 남면 조전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 등 많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장승배기'라는 지명의 유래는 공통적으로 장승이 서 있던 지역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장승이란 무엇이며, 왜 그렇게 많은 지역에 장승이 서 있게 되었는지, 그 어원은 무엇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의 구룡산에 장승공원이 있다. 2004년 3월 폭설로 고사한 폐목을 이용해 만든 온간 형태의 장승 500여 점이 자리하고 있는데, 폭설로 피해를 본 주민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장승은 저마다 개성이 가득한 모양과 표정을 하고 있으며 해마다 가을이면 장승 축제를 열고 있다. 그런데 폐목으로 왜 장승을 만들 생각을 하였을까? 아마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각종 자연 재난으로부터 우리 마을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승을 만들어 세워 온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달라는 마음으로 이 많은 장승을 일일이 조각한 마을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웃고 있는 장승의 형상이 마냥 즐겁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장승의 기원은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장승의 흔적은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는데도 지명 속에 장승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지명을 찾아볼 수가 있다.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내추리에 장성마을이 있고 이 마을에서 옥산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장성고개인데 '장성(長城)'이라 표기하고 옛날에 기다란 토성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아주 오랜 옛날에 고개에 장승이 있었으므로 장승고개라 부르다가 장승이 없어지면서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렵게 되자 장성(長城)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0호인 돌장승이 있는데 바로 앞 도로의 버스정류장 안내판에 쓰인 '선돌'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돌이 서 있다 하여 선돌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돌장승의 얼굴 생김새는 마을 어귀를 지키는 장승이지만 돌장승의 명문에 기록된 '시주자, 화주'라는 글자들과 이마에 동그랗고 뚜렷하게 새긴 백호를 볼 때 '청주 순치명 석조여래입상(淸州 順治銘 石造如來立像)'이라는 이름처럼 불교의 흔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절에서 만든 예배불이라면 정교하게 조각했을 터인데 허름하게 조각한 것으로 보아 마을의 주민들이 불교가 성행하던 시절에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운 것으로 추측이 된다.

용정동 돌장승의 원래 위치는 이정골 입구 정자가 있는 버스정류장 자리였으나 오래전 큰 장마로 인해 돌장승이 영운천 하류로 떠내려가 개울 바닥에 박혀 있던 것을 40여 년전 마을 사람들이 발견을 해서 오늘날의 자리에다 다시 세웠다고 전해진다.

장승이란 나무나 돌로 다듬어 만든 사람 모양의 형상물로 마을이나 절의 입구, 또는 고개 등에 세웠는데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일종의 수호신으로서 마을이나 절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나쁜 기운이나 병마, 호환을 방비하는 동시에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지켜준다고 믿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이를 신령시하여 제사를 드리거나 치성을 드리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또 하나는 장승에 인근 지명까지의 거리를 표시하여 이정표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장승의 이러한 다양한 기능은 장승의 기원이 오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어 왔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다양한 의미로 혼용되다 보니 장승이라는 말도 다양한 기능을 가진 신앙물, 이정표 등을 두루 가리키는 일반명사처럼 쓰인 것으로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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