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잉어배미

2024.12.25 14:43:00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최근에 충북도청 청사에 담장을 헐어내고 잔디광장을 만들며 옥상의 하늘 정원을 만드는 등 새로운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청사이기에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이제 도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활짝 개방한다는 것은 시대에 걸맞는 뜻깊은 변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 욕심을 더 부려 본다면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청사가 들어서기 전에 수 천년간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지형적,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일도 함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현 도청이 있는 자리는 도청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잉어배미'라고 불렀으며 물이 깊어 잉어를 기르고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되었었다. '잉어배미'라는 지명에서 '배미'란 '논배미'라는 말처럼 '농사짓는 땅'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잉어'를 잉어(鯉魚)라는 물고기로 본 것은 소리의 유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잉어가 우리 조상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잉어는 단백질과 비타민 B1, E, D를 많이 함유한 자양 식품으로 임신 중이나 병을 앓은 뒤 체력 회복에 좋다고 한다. 입덧에도 효과가 있으며 수유 중의 여성에게는 젖이 잘 나오게 하고 출산 후의 빈혈에도 좋다. 또 잉어에는 정자의 구성 성분인 아르기닌과 히스티딘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남자가 먹으면 정자수가 많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잉어는 소변을 잘 나가게 하고 부은 것을 내리며 기를 내리고 태아를 안정시킨다. 또한 임산부의 몸이 붓는 것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중국 설화에 "90세가 되어서도 정력이 왕성한 노인이 있었는데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20세 처녀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 노인이 평소에 즐겨 먹은 음식이 잉어에다 구기자를 넣은 잉어 구기자탕이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 따르면 "리어(鯉魚)를 우리나라에서는 이응어라고 말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잉어로 변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언어학적으로 살펴본다면 한자어 '리어(鯉魚)'의 우리말 독음이 '리+ㆁㅓ'이므로 'ㆁ(꼭지이응)'이 '리'에 붙어 '리ㆁ(링)어'가 되고 다시 두음 법칙으로 '리(링)'가 '이(잉)'로 되어 '잉어'가 된 것이므로 정약용이「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설명한 내용이 정확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순우리말에 이미 '잉어'라는 말이 존재하여 두 말이 혼용된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 모시를 짤 때에 엮어 짜는 실을 잉어실이라 하여 일상생할에서 자주 사용되던 말이었으며 옛날 전통놀이 중에도 '잉어 놀이'가 있었다. 기와밟기 놀이와 비슷한 놀이로, 아이들이 차례로 등을 굽히고 앞사람의 허리를 잡아 한 줄로 늘어선 다음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해서 이긴 사람은 늘어선 사람의 등을 밟으면서 지나가도록 하는데 등에서 떨어지면 벌칙을 받는 놀이다. 이 놀이의 변형으로 두 줄로 늘어선 후 양손을 내어 방석처럼 상대의 손목을 엮은 다음 그 엮은 손 위로 지나가게 하는 놀이도 있다. 놀이의 형태로 보아 여기에서 '잉어'란 물고기와 관련된 이름이 아니라 두 물건을 엮어서 연결하는 '잉어'라는 고어에서 비롯된 놀이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지명에서도 '잉어'라는 지명 요소가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와 진천군 초평면 용산리의 '잉어배미'를 비롯하여 미원면 가양리의 '잉어바위'와 '잉어배미', 충남 아산시 송악면 강장리의 '잉어재골', 경기도 이천시 진리동과 경북 상주시 흥각동의 '잉어들', 경기도 이천시 율면 월포리의 '잉어자리골', 경북 경산시 남천면 신방리와 전북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의 '잉어골' 등 지명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지명 요소인 '잉어'를 물고기인 잉어와 음의 유사성으로 억지로 연관짓고 있으나 '잉어'의 수식을 받는 지명 요소들로 보아 '잉어'는 물고기가 아니라 지형의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명에서의 '잉어'는 물고기가 아니라 예로부터 사용하던 순우리말인 '잉어'로서 '두 지형지물의 사이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는 지형'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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