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에는 '보은 삼산(三山)'이라 불리는 세 개의 명산(名山)이 있다. '지아비 산(夫山)'이라 불리는 속리산(천왕봉)과 '지어미 산(婦山)'인 구병산, 그리고 그 둘을 부모로 둔 '아들 산(子山)'인 '금적산'이다. 속리산과 구병산은 기암 괴석이 많은 골산(骨山)인데 비하여 금적산은 산세가 부드러운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금적산에는 다음과 같이 애처로운 옛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먼 옛날 이곳에 금송아지가 살고 있었는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금비둘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금송아지의 정성 어린 구애 끝에 결혼한 금송아지와 금비둘기 부부(夫婦)가 금슬 좋게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인 금송아지가 밭을 갈다가 넘어져 두 눈을 잃고 말았다. 아내인 금비둘기는 눈먼 금송아지를 위하여 열심히 봉양하였으나 엄청난 금송아지의 식욕을 충족시키기에는 힘에 겨웠다. 해가 거듭될수록 금비둘기는 지쳐갔고 끝내는 혼자 떠나 버리고 말았다. 홀로 남은 금송아지는 금비둘기를 찾아 헤매다가 지친 나머지 쓰러져 죽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이 금송아지가 죽은 산이라고 해서 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송아지가 죽을 때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꼬리는 남쪽으로 향하였는데, 지금도 꼬리 쪽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에는 사금(砂金)이 많이 나오고 머리를 두었던 북쪽인 보은군 삼승면 서곡리에는 부자(富者)가 많이 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지명 유래와 민간 전승 설화들은 금적산(金積山)이라고 한자로 표기된 지명에서 한자의 의미(金積山 · 금이 쌓여 있는 산)를 최대로 이용하여 주민들이 바라는 꿈과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즉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먹을 것이 부족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다 보니 매일 마주하는 산에 금덩어리가 쌓여 있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부자가 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지명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금적산이라는 이름은 어떤 말에서 비롯된 말일까?
금적산의 바른 유래는 지명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 흔한 지명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금적산'에서 '금'이란 '크다'는 의미의 '가마, 감, 검, 금'이라는 고어이고, '적'이란 '산'이란 의미의 '잣'에서 온 말이니 '금적산'이란 '큰 산'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이름인 것이다.
백두대간인 속리산 천왕봉에서 안성의 칠장산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이 구봉산(549m)을 지나 쌍암재 직전 해발 430봉(보은군 회북면과 수한면의 경계)에서 분기하여 남쪽으로 충북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50km의 산줄기를 금적지맥(金積枝脈)이라고 한다. 이 산줄기에는 구룡산(549m), 노성산(572m), 국사봉(551m), 거멍산(495m), 덕대산(575m), 금적산(652m), 국사봉(475m) 등이 있으며, 가장 높은 금적산을 대표로 금적지맥이라 하는 것이다.
보은군 수한면 성리를 지나는 금적지맥에 거멍산(450m)이란 산이 있다. 이 산줄기를 따라서 수한면 광촌리 두루봉(493.5m)과의 사이에 있는 안부를 지나 두루봉으로 올라가다 보면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역시 거멍산이라 부른다. 산이란 많은 산줄기가 겹겹이 갈라지고 여러 봉우리가 모여서 이루어지는데 그 봉우리의 모습이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에 산이름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옛날에는 드론이나 헬기를 이용한 항공사진이 없기에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산봉우리를 보는 방향에 따라 산이름이 중첩되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흔하였다.
거멍산이라는 이름의 언어 변이를 살펴보면 '거멍산'은 '검은산'의 의미이다. 전국의 지명에 많이 나타나는 '가마산, 감악산, 금악산, 오성산'이라는 지명들의 뿌리가 바로 '크다'는 의미의 '가마, 감, 금'이기에 '거멍산'은 '큰 산'의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금적산'도 한자로 표기되기 전의 순우리말 이름은 '거멍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거멍산'이라 부르는 여러 봉우리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그중 가장 높은 봉우리를 미화하여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금적산(金積山)'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