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눈감고 뜬 것 같은데 내 나이 내일이면 칠십, 칠십 년은 참으로 긴 시간이다. "딱히 이루어 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었다며 허망하다." 시던 어머니의 독백이 들리는 듯하다. 누군가 인생을 희비애락이라 하지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내 지나온 여정은 기쁨과 슬픔과 애처로움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이따금 힘들어 주저앉고 싶었을 때, 아니면 벼랑 끝에 헤매 일 때도,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를 이끌어 준 은혜로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삶은 경이로움이며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오간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오늘을 살아냄이 감사요 살아있음이 감사이다.
묵은해를 보내며 하늘이 베푸는 선물처럼 눈발이 흩날린다. 해돋이를 하려고 집을 나섰다. 지척에 고향을 두고 사는 덕에 이맘때면 으레 고향의 숲길로 향한다. 하얀 눈송이가 아는체하며 따라오라는 듯 나부낀다. "황토 산 장고개 여수 굴 원흥이 방죽 산중 말 느티나무 "어릴 적 뛰놀던 고향의 산야 이름들이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야 전깃불이 들어왔으니 당시 고향의 모습은 남루하고 어둑해 보였다. 나는 중학교 시절 집을 떠나 장년이 되어 청주로 역이민(?)을 왔다. 그사이 고향은 택지개발로 인해 격랑의 시간을 겪으면서 마침내 도심 속 시민의 쉼터로, 생태교육 공간으로 거듭나 있었다. 자주 다니던 좁다란 들길과 올망졸망한 가옥들, 논둑을 끼고 돌던 작은 개울, 장맛비라도 내리면 딸을 업어 징검다리를 건너 주시던 아버지의 초상까지, 흔적 없이 사라져간 고향이 못내 아쉬워 가끔 추억을 반추하곤 한다.
회색빛 하늘에 빠꼼이 해가 돋았다. 두꺼비 생태문화관을 지나 고향 마을을 복원해 놓은 데크 길을 걷는다. 인적이 드문 숲길은 고요하다. 싸늘한 겨울 공기에도 숲은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다. 마른 풀 한 포기 바람 한 줄기마저 고향이란 이름 앞에 모든 것이 살갑다. 이름 모를 산새 한 마리가 옛길을 안내하는 양, 나목들 사이로 앞서 날아간다. 타박타박 흐릿한 기억들을 더듬어가며 흩뿌려진 눈길을 걸었다. 층층나무 상수리나무 자귀나무 떡갈나무… 나이테가 굵어진 나무 이름을 불러가며 동심에 잠긴다. 무채색의 겨울 숲길도 마냥 행복하다. 물줄기를 따라 걷는 사이 원흥이 방죽이 보인다. "툼벙!" 하고 유년의 그리운 조각들이 물보라를 친다. 어린 날 무섭게만 보이던 수심이 어느덧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함을 준다. 방죽 한 켠에 가난했던 시절 동무들과 마름을 캐 먹던 추억이 오롯이 솟아오른다. 조류전망대에 서니 물 병아리 대여섯 마리가 유유자적 물 위를 떠돌며 한기를 즐기고 있다. 이내 방죽물가 마른 수초덤불에 앉아 소곤소곤한다. 이 소소하고 정겨운 풍경들은 무언의 위로가 되고 새해를 여는 밑그림이 되기도 한다. 방죽 들머리에 있는 300년 된 느티나무 앞에 서면 괜스레 숙연해진다. 느티나무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내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는 불길한(?) 예감에 언제나 고해성사하는 기분이다. 만고풍상의 세월을 품었을 우묵한 옹이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이 나이 먹도록 나를 기억해주는 나무는 나의 부모요 형제와 같은 보물이다. 삶이 고단하고 힘겹다 여겨질 때, 안식처로 삼고 찾아와 쓸데없는 넋두리를 늘어놓아도 파란 잎새를 나폴 거리며 내 응석에 화답하는 늙은 느티나무, 오늘도 나의 늙은 느티나무에게 말을 건넨다. 삶에 순응하는 지혜를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