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정원에서

2025.06.08 16:25:16

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아기 발걸음에 따라 삑삑 소리가 난다. 마치 참새가 재잘대는 것처럼 유쾌하게 들린다. 오월 햇살이 내리쬐는 카페 정원을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녀석을 따라다닌다.

싱그러운 초록 물결 사이로 활짝 핀 작약꽃이 탐스럽다. 아기 얼굴처럼 뽀얀 꽃송이가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손자 웅이의 달큰한 체취와 어우러진 꽃내음이 묘한 편안함을 안긴다. '평화'라는 명사에 향기가 있다면 바로 이런 향기가 아닐까.

바이러스 감염과 폐렴으로 2주 동안 병실에 있던 손자 웅이가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정원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감사하기만 하다. 14개월에 접어든 웅이는 병원에서 걸음마를 시작했다. 퇴원 후 걷는 재미에 푹 빠져 주변을 탐색하느라 분주하다.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사방을 탐방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저 눈높이에서 보는 세상은 어떤 이미지일까.

주변을 맴돌던 아기가 난관을 만났다. 방부목으로 만들어진 계단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을 내민다. 두 손을 맞잡고 올라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다 올라간 아이는 내려오려고 앙증맞은 손을 다시 내민다. 몇 번 하다가 그만둘 줄 알았는데, 십여 차례 이상 오르내리기를 해도 멈추질 않는다. 나는 살짝 피로감이 느껴졌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는 무한 반복을 할 태세다. 아이의 관심을 돌리려고 가족들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자, 거부 의사 표시로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스스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혼자 어떻게 하는지 아이의 반경에서 지켜보았다. 내려올 때는 양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뒤로 다리를 뻗어 먼저 계단의 높이를 가늠했다.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아이는 본능적으로 위험성을 줄였다. 대견했다. 한쪽 손을 잡아주자, 내 손을 꼭 쥐고 힘껏 발을 들어 올린다. 지혜로운 행동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문득 '조나단 리빙스턴'을 떠올렸다. 조나단 리빙스턴은 리차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 주인공이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완전한 삶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배움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던 작은 새. 자유롭게 비상하며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한 갈매기의 자유를 향한 무한한 사상思想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르곤 한다.

조나단의 비상은 단지 먹이를 찾는 데 그치지 않았다. 가치 있는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도전하고 배우고 발견했던 조나단은 자신이 체득한 모든 것을 갈매기 떼 전체가 누릴 수 있기를 소망했다. 조나단의 꿈은 어떻게 되었을까.

언젠가 갈매기에 대한 환상이 깨진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석모도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서해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갑판에 서 있는데, 갈매기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으려고 앞다투어 뱃전까지 모여들었다. 순간 고도의 비행술에 감탄하면서도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갈매기의 비상이 더 먼 곳으로 향하기를 바랐다.

조나단의 스승 치앙의 말을 빌려와 손자를 향한 소망을 담아 본다. "언제나 사랑을 실천하게나." 더 높이 더 멀리 비상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다는 명징한 진리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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