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과수원 사잇길을 지날 무렵, 차 창밖 창공에 잿빛 점들이 눈에 띄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새가 지근거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점묘화가 움직이는 듯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새들이 공연을 펼치듯이 장관을 연출했다. 새 떼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날갯짓에 따라 회색 깃털 사이로 하얀빛이 반짝였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새들은 직선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비행하다가 활공하고 비상하기를 반복했다. 수많은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바람 소리처럼 들렸다. 선두 대열이 지상 가까이 다가오면 댓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시간차를 두고 날아오르는 후미에서는 솔바람 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흩어졌다. 그렇게 저공과 고공의 비행을 거듭하면서 새들은 점차 서쪽으로 이동했다.
개체와 개체가 어우러진 집합체의 유희가 경이로웠다.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무리가 일순간의 부딪침도 없이 화려한 군무를 펼쳤다. 저토록 자유롭고 조화롭게 일치할 수 있다니….
함께 있되 자율적인 고도의 비행술이었다. 개체와 개체 사이의 흐르는 기류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개별적이고 전체적인 통일감이 돋보이는 율동이었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하늘을 유영하는 새들의 몸짓이 지극히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한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특별한 공연을 감상했다.
새들이 과수원을 지나 빈 겨울 논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광경을 지켜보는 데 문득 언젠가 맞닥뜨린 아찔했던 순간이 떠올라 잠시 단상斷想 속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어느 날 영광에 있는 선영先塋에 다녀올 때였다. 서해안 고속도로 줄포IC를 지날 무렵이었다. 오른쪽 하늘에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다. 먹구름인가 싶었는데 까마귀 떼였다. 그렇게 많은 수의 새 떼를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큰 무리가 푸른 하늘에 검은 장막을 펼치듯 몰려오고 있었다. 고속 비행으로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새 떼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날아가는 새들이 도로 중앙 분리대에 부딪칠 것만 같았다. 기습적인 근접 비행에 자동차 안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검은 비닐이 날아와 정면을 덮어버린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차체車體를 스쳐 지나가는 새 무리로 인해 가슴을 졸이며 운전해야 했다.
적당한 간격은 미학적인 거리이다. 존중과 배려의 공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알맞은 거리가 유지될 때, 돈독한 관계가 지속된다. 저마다 지닌 다양한 가치관이 부딪치고 다듬어지는 사유의 시간도 '간격'이라는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배우고 나누며 관계성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삶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여정, 각기 고유한 날갯짓이 방해되지 않을 만큼의 거리, 획일적인 간격이 아닌 장단의 유연한 거리가 확보될 때, 평화로운 기류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편안한 날갯짓으로 비상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함께 광활한 우주를 유영하는 대열 속에서 고유하고도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