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에 띄우는

2024.04.18 16:41:25

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사무국장

계절이 옷을 갈아입었다.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봄꽃과 연둣빛 새순으로 곳곳이 봄빛이다. 봄비에 갓 세수를 한 듯한 말간 벚꽃이 상춘객들의 표정을 환하게 비춘다. 하얀 꽃그늘에서 추억 쌓기에 여념 없는 연인들을 보니, 이제 막 인생의 봄길에 들어선 아들 부부가 떠오른다.

자연의 순환처럼 사람 사이에도 감정의 사계절이 있다. 밀접한 관계일수록 심리적 기온 변화에 민감하다. 삶의 여정은 인간관계의 기류를 타고 흐르는 과정이리라.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선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막연한 기다림이 현실이 되니 반가우면서도 오묘한 기분이었다.

아이가 좋은 짝을 만나 봄 뜨락을 거니는 동안 남편은 늦가을에 들어선 모습이었다.

남편에게 아들은 착한 자식이자 좋은 친구였다.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주말이면 집에 와서 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부자父子가 함께 운동하고 술 한잔 곁들여 세상사를 나누는 시간을 남편은 좋아했다.

혼사가 결정되자, 예식에 관한 제반 사항은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혼례 문화가 바뀌었단다. 주례사는 부모의 덕담이나 편지로 대신한다고 했다.

편지를 쓰다 보니 우리 부부가 걸어온 옛길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달큼하고 포근한 봄빛과 함께, 핑크빛 환상이 사라진 후의 현실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이었다. 5남매 집안의 맏며느리로, 아내와 엄마로 살아오는 동안 무수한 사계절이 순환했다.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계절은 순서가 없다. 포근한 봄 한가운데 있다가도 어느 순간 쓸쓸한 가을 앞에 홀로 서 있기도 했다. 때로는 불편한 심기를 불러온 원인 제공자는 따로 있는데도, 애먼 남편 앞에 찬바람을 보내기도 했다.

서른아홉 해의 혼인 생활을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쓰다 보니, 지금의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들, 그리고 마음까지 예쁜 아람아!

결혼생활은 기차가 달리는 레일 같은 거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둘이 늘 한 마음이면 좋겠지만, 간혹 접점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단다. 철길이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선을 유지할 때, 기차가 안전한 운행을 하듯이, 나란히 손을 잡고 두 개의 선을 따라 걸어도 같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구나.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땐, 있는 그대로의 배우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지혜를 발휘하면 평화롭게 나아갈 수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잠시 자리를 바꾸어 보렴. 배우자의 자리에 앉아 상대방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단다. 그렇게 서로 존중하는 마음과 사랑으로 예쁜 가정을 이루고, 너희 부부의 사랑이 이웃과 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으로 스며들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린단다."

흔히 주고받는 축복의 인사로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을 한다. 요원하기에 염원하는 덕담일 것이다. 인생 여정의 가시밭길을 잘 걸으라는 응원처럼 들린다. 피할 수 없는 궂은 길이라도, 마음 길을 닦아 꽃길을 걷듯 시간의 바다를 관조하고 향유할 수 있기를 거듭 기원하는 봄날이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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