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하루

2025.04.06 14:35:29

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시샘 달 밤공기가 매섭다. 영하 16도를 밑도는 기온이 종종걸음을 걷게 한다. 마감일을 하루 앞둔 원고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가로등이 있는 전면에 반해 뒤쪽이 어둡다. 출구 방향을 확인하고 후진했다. 순간 퍽! 하는 소리에 뒤를 가로막는 실체를 직감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에서 내렸다. 점잖게 서 있는 검은색 차량에 내 차가 닿아 있다. 112에 전화했다. 차 주인은 왔는데, 자동차보험사의 출동이 늦다. 추위에 발을 동동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더해진다. 감사함으로 채웠던 하루가 엎질러진 물잔이 되고 말았다.

사소한 요행이 이어진 하루였다. 가까운 친척의 혼사가 있어 부천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가경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할 방법을 궁리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시외버스터미널 환승 주차장을 알게 된 것이다. 왕복 티켓을 소지하면 주차요금 50%가 할인된다니 택시 요금보다 저렴하고 편리할 것 같았다.

탈서울 시민이 된 지 오래다. 직접 운전하고 다니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살짝 긴장된다. 모바일 청첩장을 확인하고 복잡한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를 검색했다. 예식 장소가 7호선 상동역 근처인데, 낯선 곳이다. 부천터미널에서 내린 후, 이동 코스를 몰라 상동역을 찾으면 되겠다 싶었다.

요금소를 벗어난 버스가 강에 도달한 냇물처럼 넓은 도로의 차량 행렬에 합류했다. 빨간불 신호에 버스가 정지했다. 무심히 창밖 풍경을 보는데 기억해두었던 전철역이 눈에 띄었다. 운전기사에게 혹시 내릴 수 있는지 물었다. 머뭇거리던 그가 곤란한 표정으로 곧 도착하니 기다리라고 했다. 되짚어 올 동선을 생각하는 사이 버스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하차하는 사람들을 따라 나가다 환영객처럼 서 있는 반가운 글자를 발견했다. '소풍웨딩컨벤션 7층' 내 목적지가 바로 터미널과 같은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 편의를 거부했던 운전기사가 고맙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은 강남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부천은 청주행 막차 시간이 일렀다. 서둘러 나왔지만, 도보로 지하철역을 찾아가는 데 예상 시간을 초과했다. 전철이 정차할 때마다 남은 역의 숫자와 시간의 셈을 했다. 스물두 곳의 역을 거쳐 가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전철은 더디게 움직이는 듯했다.

예매한 티켓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주말이라 다음 차를 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가운데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드렸다. 고속터미널역이 가까워졌다. 어쩌면 차를 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갈래 길이 많은 지하상가의 이정표를 좇아 뛰기 시작했다.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도착한 보험사 직원이 후속 조치를 안내한다. 적잖은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다치지 않고 느슨했던 안전운전 의식이 팽팽해졌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애써 자위해 본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잊었던 언어를 떠올린다. 묵은 먼지를 털어 낸 고사성어가 내 하루의 종점에서 불빛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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