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출근길 KTX를 타기 하기 위해 맨 먼저 승차장에 서 있었다. 바닥에 표시된 탑승 호실을 확인하고 정 중앙에 섰다. 하차하는 승객들이 불편 없이 내릴 수 있도록 안전선보다 더 여유를 두었다. 찬 기운이 몸을 움츠러들게 했지만, 예약해 둔 승차권으로 편안히 앉아서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20여 분을 기다리는 일마저 여유로웠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뉴스에 빠졌다.
어느 순간 오른편에 중년의 멋진 신사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오른팔을 펼쳐도 닿지 않을 거리다. 멀찍이 떨어져서 열차가 들어오는 방향을 보거나 서성대더니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거다. 겉모습이 믿음직해 보였던지 열차가 도착하기 1~2분 전쯤에는 그의 뒤로 많은 사람이 줄지어 섰다. 돌아보니 내 뒤에는 서너 명밖에 서 있지 않았다. KTX 승강문은 좁아서 한 줄로 서는 것이 암묵적 질서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두 갈래의 정연함이 열차가 들어서길 기다리고 있었다.
KTX는 표시된 위치에 정확하게 멈춰서서 승강문을 열었고, 좁은 통로를 지나 한 사람씩 내렸다. 모두가 춥고 모두가 바쁘다는 걸 알기에 한 발짝 앞으로 내딛지 않고 제 자리를 지켰다. 뒤에 선 사람들 역시 그대로 서 있다. 사람들이 거의 내렸나 싶은 순간, 오른편에 서 있던 신사분께서 내 앞을 가로질러 쏜살같이 열차에 올랐다. 우려했던 상황이다. 그의 뒤에 선 사람들은 그제야 줄을 잘못 선 줄 알게 되었다. 좌표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사람들. 한동안 엉클어진 모습이었지만 내 뒤의 사람들과 어우러져 모두 탑승하였고 열차는 출발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막연한 불안과 슬픔을 느꼈던 적이 있다. 사춘기 때의 그 감정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어른의 모습이 고통으로 다가왔던 걸까. 예전에는 상투를 틀거나 쪽 찐 머리를 한 사람들, 즉 혼인 후 작게는 자신과 가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시작한 사람부터 어른이라 부르며 비로소 대우하였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혹은 한마디의 말을 꺼낼 때마다 누군가의 깃발이 된다는 사실을 제도적 어른이 되어서야 여실히 느낀다.
탄핵정국을 지나며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을 키운 '어른 김장하 선생'의 미담이 화제다. 왜 선생에게 유독 '어른'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걸까. 그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른의 발자국이, 울림 있는 말씀이 결국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었음에서다. 언행이 일치하는 어른,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을 알며 공동체를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어른,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결국은 고결한 인품이 드러나는 어른. 너도나도 잘났음을 내세우는 시대에서 닮아가야 할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아니던가.
앞에 선 대선 후보들에게 묻는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바른 위치인지, 뒤에 선 사람들이 더 행복한 발걸음을 세상에 내디딜 수 있도록 세세히 살피고 있는지를. 또한 바란다. 푸른 공약을 내걸고 변화의 열차에 오를 그대들, 혼란의 시대를 끝내고 화합과 안정의 시대로 이끌어 주기를. 기대한다. 끝까지 어른의 모습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