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동행

2025.01.21 14:15:26

임정매

시인·'함께 읽는 시' 동인

"아아아악! 왔어요, 왔어." 묵직한 택배 상자에서 동료가 탄성과 함께 꺼내 든 것은 회사 소식지였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이번 호의 주요 사진 속에서 우리 지부 모든 직원의 앳된 얼굴이 펼쳐졌다. 소식지 투고를 위해 깔깔거리던 시간이 떠올랐다. 사무실 분위기는 한두 달 전의 그때를 추억하며 다시 떠들썩해지고 웃음이 넘친다.

시작은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난 뒤였다. 나른한 시간, 여느 때처럼 사무실 중앙 통로에 모여 몇몇 직원들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일 것 같은 싱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여기에는 20대에 자칭 타칭 BTS급이었다는 50대 동료의 귀여운 '외모 사칭'이 있었다. 현재 모습으로는 도무지 상상 불가이지 않은가. 증빙 요청이 당연했고, 동료직원은 기다렸다는 듯 휴대전화에 고이 저장해둔 20대 시절 사진을 내보였다. 심각하게 변한 현재와 대비되는 그야말로 아이돌급 외모에 직원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랬다. 시간의 두께와 직장생활의 피로감으로 몰라보게 달라지긴 했으나 풋풋했던 젊은 날이 우리에게 있었던 거다.

결국 모든 직원이 자신의 20대를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열정과 패기 넘치던 입사 초기의 모습, 불과 몇 년에서 수십 년 전의 전성기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급기야 회사 생활이 외형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하여 입사 연차별로 구분, 자신의 변화에 대한 소감을 모아 소식지에 투고해보자는 청년 직원의 발랄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채택될 경우 아주 작은 수치이긴 하지만, 물론 지부의 성과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MZ 세대부터 50대인 평직원과 관리직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책, 성향을 지닌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감정 노동이 많아 이로 인한 개인별 스트레스가 적진 않다. 덧붙여 한두 시간 족히 걸리는 원거리 출퇴근 직원이 여럿 있다. 이마저도 안되는 비연고지 직원은 가족과 떨어져 원룸 생활을 한다. 인사발령 때마다 불만들이 속출하는 이유다. 배치된 근무지에서 팀워크가 맞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더해진다. 여기에 목표를 향해 채찍질만을 가하는 관리자를 만나기라도 하면 업무 환경은 꽁꽁 얼어붙게 된다.

생계가 아닌 직장은 없다. 그렇다고 직장이 고립무원이거나 전쟁터가 되어서도 안된다. 구성원들은 안정된 환경에서라야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서 더 생산적이고 건강한 조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안정된 환경이란 무엇인가. 개개인이 지닌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장(場)일 것이다. 원활한 소통은 관심과 존중, 즉 서로가 지닌 고유한 세계에 관한 인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명랑의 발화점은 어디였던가. 권위만을 앞세우지 않는 풍부한 경험을 지닌 기성세대가 있었다. 대화를 이어가려는 열린 사고의 청년세대도 있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가벼운 수다에서 비롯된 아이디어가 조직의 작은 성과로 이어진 경험은 즐거움으로 남았다. 세대를 넘어선 화합과 진정한 동행의 의미를 일깨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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