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재
국민연금공단 대전세종지역본부 노후준비서비스 팀장
사무실에서 짐을 빼 왔다. 이달 말일 자로 퇴직을 하기 때문이다. 33년간 일을 하면서 쓰던 것들이다. 낡고 손때묻은 사무용품들, 공부하던 책, 슬리퍼, 치약·칫솔까지 한 살림 족히 되었다. 볼 시간도 없으면서 보겠다고 모아둔 책들이 많았다. 놔두고 나와야 버려질 것 같은 집기들도 들고 나왔다. 집에 가져다 놓으면 직장생활의 추억이 생각날 것들이다.
퇴직하면 책상을 빼는 줄 알았더니 짐을 빼게 된다는 걸 알았다. 전에는 어쩌다 휴가라도 길게 가게 되면 직원들끼리 농담으로 '자리를 많이 비우면 책상을 뺄지도 모른다'라며 웃고 떠들었는데, 책상은 뺄 필요가 없는 거였다. 내가 나오면 그 자리엔 다른 사람이 와서 앉게 되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내가 사놓은 자리가 아니라 회사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앉게 해주었던 자리였고, 이제 내 일을 다른 사람이 하게 되니 나는 그 자리를 놓고 나와야 했다.
33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완전히 짐을 뺐다. 그동안에도 짐을 몇 번 빼기는 했었지만 그건 전보 발령에 따라 근무지를 이동할 때였다. 한쪽에서는 짐을 빼지만 다른 곳에 가면 그곳에 내가 앉을 자리가 있었다. 자리 이동을 위한 짐 빼기였다. 그러니 짐을 뺀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동할 자리가 없어 빼기만 했다. 갈 데 없는 짐은 하는 수 없이 집으로 와야 했다.
전보 발령이 아닌 퇴직 발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퇴직은 이달 말이지만 써야 할 휴가가 많이 남아 남은 날들은 휴가 처리하고 미리 나왔다. 짐은 빼내 오지만 많은 것을 남겨두고 왔다. 같이 일하던 동료 직원들, 내가 맡아서 하던 일들, 나에 대한 동료들의 추억들을 남겨 놓고 왔다. 내가 그동안 일을 하면서 이루어 놓은 업적(?)들도 모두 남겨 놓고 왔다.
짐 속에는 나의 직장생활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입사를 위한 공채시험 수험표, 합격자 발표가 났던 신문 스크랩, 신입사원 연수교육의 수료 기념사진, 첫 월급을 받았던 월급봉투, 매년 받은 연봉을 정산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들, 승진발령이 났던 문서 등 입사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물품들이다. 사진 찍기 좋아했던 선배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찍어준 추억의 사진들도 많이 있었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 건 알고 있었기에 진즉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짐을 싸서 나오다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단순히 짐만 빼는 게 아니라 평생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니 어찌 감정의 동요가 없을까. 직장은 내 인생의 든든한 지주였다. 흔들리는 내 삶을 잡아주었고, 우리 가족의 생활비를 벌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때는 스트레스 지옥 같은 극한 직장이기도 했지만, 마지막 3분의 1 기간은 정말 행복한 일터였다.
일자리와 월급이 끊기는 것 외에도 퇴직과 동시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지겹도록 쓰던 1980년대 사원번호,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던 신분증, 자신 있게 건넬 수 있었던 명함도 이제는 쓰지 못하게 된다. 사용하기는 불편하지만 자랑스럽게 알려주고 써오던 회사 도메인이 들어간 이메일 주소도 이제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좋아지는 것도 있다. 이제는 아침 일찍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사업실적 신경 쓸 필요 없고, 민원전화에 시달릴 일도 없다. 수시로 내려오는 사이버 교육 명령, 더 바꿀 게 없을 정도로 한계에 이른 로그인용 비밀번호 만들기, 매일 점심은 뭐로 먹을까 하는 귀찮음과 고민에서 이제 벗어나게 된다.
퇴직과 동시에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 하나가 사라졌다.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으로는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내가 앉을 자리가 있었고, 즐겁게 할 일도 있었으며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서 좋았던 그곳에 이제 나갈 수가 없다.
이제 다시 새로운 공간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도 찾아야 한다. 이전 일터에서 뺀 짐은 새로운 일터로 옮길 예정이다. 더 자유롭고 더 즐거운 곳을 찾아서. 나에게 퇴직은 은퇴가 아닌 사외 전보 발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