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은 누가 키우나

2019.03.10 14:41:14

이태재

국민연금공단 청주지사 노후준비서비스 팀장

'콩이라니. 어, 이거 무슨 얘기지?'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제목만 언뜻 보고 영화 '킹콩'의 콩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여기서의 콩은 우리가 먹는 그 콩을 말한다. 먹는 콩은 농작물이니 키운 다기 보다는 '재배한다', '농사짓는다'고 해야 맞는다. 모 개그프로그램의 오래전 유행어를 패러디해봤다. 영화광들은 실망하겠지만, 제목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할 거 같다. 제목에 낚였더라도 이왕 눈길을 준 김에 끝까지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한다.

지난 해 가을 어느 시골마을에 놀러갔다. 같이 일하는 직원이 은퇴 후에 그곳 동네에 작은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한다. 농사터라고 해봐야 텃밭 보다 조금 큰 정도의 땅이다. 취미생활이나 소일거리 정도의 농사가 될 거 같았다. 동료직원들과 함께 그 직원의 은퇴 후 생활을 축복해주고, 응원해주기 위한 행차였다.

걸어서 농촌 속으로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볼 수 없었던 농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차를 타고 지나면서 봐왔던 농촌의 풍경은 어릴 적 추억 속에 저장돼있던 그 모습일 뿐이었다. 그러나 차를 내려서 깊숙이 들어가 본 지금의 농촌 모습은 추억 속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우선 마을 동산에서 뛰어놀던 어린 친구들이 모두 사라졌다. 시끌벅적하던 초등학교도 없어졌고, 중학교도 쪼그라들었다. 마을은 몇 안 되는 노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 연로하셨고,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은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노인들마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심각한 '농촌 고령화와 인구감소' 현상이다.

농촌지역은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상태다. 2016년 국내 면지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율은 28.1%로 초고령사회로 칭하는 20%를 훨씬 웃돌고 있다. 전체 농가주 가운데 40세 이하 농가주는 100명 중 한 명 정도라 한다. 농촌 마을에 가면 70세까지는 마을 '청년회' 회원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들판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논농사는 아직 잘 되고 있는 듯하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논은 대부분 평지이고,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농기계를 이용한 작업이 용이하다. 그래서 고령의 농민들은 대부분 농기계를 가지고 있는 마을의 젊은 농군에게 대행을 시키고 있다. 벼농사는 봄에 모내기 하고 가을에 수확하면 되니 손이 많이 가지도 않는다. 누런색 논들의 모자이크가 아름다워 보였다.

논농사는 기계로 할 수 있으나 밭농사가 문제다. 밭들은 대부분 모양도 제각각이고 비탈진 곳이 많다, 환경적으로도 농기계 사용이 어려운 상황이고, 밭작물의 특성 또한 사람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한다. 작물을 심고, 비료를 주고, 흙을 돋워주고, 수확하는 걸 모두 사람의 힘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밭농사는 논농사 보다 훨씬 힘들다. 고추농사는 여름 뙤약볕에 수시로 수확을 해주어야 하며, 콩은 손으로 일일이 뽑고 타작을 해서 바람에 날려 깍지를 가려내야 한다. 필자도 예전에 콩타작하는 어머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도리깨질'을 해봤는데, 회전체의 균형을 잡고 돌려서 정확히 표적을 타격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무술 얘기가 아니다).

'가뭄에 콩나듯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고 하지만 그것도 비가 적당히 와주어야 한다. 날이 가물면 그나마 잘 나지도 않고 다 죽는다. 그래서 그런 말이 생겼다. 밭농사에 이런 가뭄이 들면 물도 대주어야 한다. 필자의 모친도 작년까지는 작은 밭에 농사를 지으셨다. 곡식들을 수확해서 자식들에게 보내주시는 재미로 지으신 농사다. 지난해 낙상으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더 이상 농사를 못하게 됐다. 설날에 친구 형님을 만났더니 올해부터는 남의 땅 농사는 더 이상 못 짓겠고, 내 땅의 농사만 조금 짓겠다고 한다. 농사욕심이 꽤 많으신 분인데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필자의 주변만 돌아봐도 이렇게 농사에서 손을 떼거나 줄이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앞으로 노는 땅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농작물 수확량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한 마을에 '가뭄에 콩나듯이' 한 둘 있는 그나마 젊은 농군들은 이런 밭농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트랙터에 앉아서 폼 나게 농사짓는 것을 더 좋아 한다. 결국 비탈진 밭에서 콩을 키우는 것은 나이든 노인들이 해야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노인들이 갈수록 농사일을 접고 있다. 농작물 대신 잡초만 우거져 있는 밭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아, 앞으로 콩은 누가 키워야 하나·"

희망 섞인 기대도 해본다. 고추, 콩 값이 지금 보다 몇 배로 뛰어 오르면 '나도 농사 한 번 지어보겠다'며 농촌으로 들어가는 은퇴자들과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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