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직전 사고가 일어난 골목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백준현 씨
[충북일보]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백준현(29)씨는 참사 당일을 회상하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직도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청주에 거주중인 백 씨는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친구 5명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한 백 씨는 참사가 벌어진 해밀톤 호텔 골목의 한 가운데에서 사고를 당했다.
이 골목을 통과하기 위해 친구 한 명과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고 나머지 4명의 친구들은 "인파가 너무 많아 도저히 못가겠다"며 다른 길로 우회하기로 했다.
길을 오르던 중 백 씨 역시 위험을 느끼고 친구 B씨에게 "돌아가자"고 제안을 했고 몸을 반대방향으로 돌려 내려가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옆사람과 어깨와 어깨가 맞닿아 하나의 군체를 이루고 있던 와중에 위에서부터 사람들이 한꺼번에 쓸려내려왔다.
백 씨는 "인파가 파도처럼 꿀렁꿀렁거리더니 위에서부터 사람들이 쭉 밀려내려왔다"며 "정신을 차리니 내 위에는 사람 4명이 쌓여있었다"고 회상했다.
"일단 버티자.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자" 당시에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백 씨는 상반신이 군중 밖으로 튀어나와있었다.
흉부에 가해지는 압박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덜한 상황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있었고 일부 사람들은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친구 B씨와 "조금만 버티자"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15분을 버텼다.
백 씨를 구한 사람들은 '이태원 의인'으로 불리는 자밀 테일러(40), 제롬 오거스타(34), 데인 비타드(32) 등 경기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한미군이었다.
이들은 백 씨를 인파에서 뽑아냈고 그렇게 구사일생, 백 씨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생환의 한숨을 돌리기도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구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곧바로 백 씨는 사람들을 구조하고 뺨을 때려가며 정신을 차리게 하는 등 구조인력들을 돕기 시작했다.
당시 백 씨는 구조가 필요한 이들에게 "3분만 참아라. 곧 구조대가 온다. 조금만 버텨라"는 말을 계속해서 했다.
이들이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까봐서다.
다행히 몇 명이 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본격적인 구조활동이 시작됐다.
그제서야 백 씨는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백 씨는 "이 모든 것이 꿈 같고 현실감각이 없어지다보니까 사고 당시의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며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이 선하다"고 말했다.
이어 백 씨는 "사고 이후에도 정신적으로 힘이 든 상황"이라며 "정신건강센터 등의 상담을 받으며 일상을 회복해나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끝으로 "뉴스를 켜면 나오는 정부와 경찰, 소방 등의 책임공방에 한숨이 쉬어진다"며 "누가 잘못했는가를 따지기보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방지책을 만드는데 신경을 써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백 씨는 자신을 구한 주한미군을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할 예정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로 충북에서는 1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 김정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