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 안데르센의 단편 "벌거숭이 임금님"은 지난 6개월 비상계엄 이후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놀랍다. 새 옷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임금 앞에 나타난 2명의 사기꾼 재단사는 무능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을 만든다며, 실체가 없는 옷을 만들어 임금으로 하여금 환호하는 군중들 앞으로 행차한다. 이때 철없는 아이가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치자, 그제야 모두들 제 목소리를 내지만 왕은 체면을 생각해서 끝까지 행차한다는 스토리이다.
이번 선거는 계엄이라는 거짓의 옷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이었으며, 예상과는 달리 근소한 차이로 일단락되었다. 아직도 거짓의 옷에 대한 미련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통합이 쉬지 않아 앞으로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연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시대적 요청,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한 청사진과 같았으며 명연설로 기억될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의식의 양극화를 의식하여, 대통령 취임사에서 "크게 통합하라는 명령"으로 대통령의 의미를 해석한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한 때이다. 새 대통령에게 세 가지만 요청하고 싶다.
첫째, 법치에 대한 진지한 숙의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일일이 법으로 다스리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의 해석을 놓고 치열한 다툼이 불가피하고, 법을 잘 알거나 회피할 줄 아는 법 전문가들이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안다. 법까지 가지 않고 상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현재의 위기적 상황에 대한 합리적 처방이 필요하다. 최근 계엄 사태와 트럼프 관세전쟁의 여파로 내수침체가 매우 심각한데, 그 충격은 일차적으로 소상공인과 수출 밴드기업들에게 향해 있다. 이들은 대체로 재무건전성이 취약하여 침체를 견디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구체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단기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저출생 문제, AI를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전환, 저성장의 늪을 벗어나기 위한 정책, 경제에 대한 근본적 구조전환, 기본소득, 제도적 취약성 개선 등과 같은 과제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서두르지 않고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가면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실질적인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은 오래된 아젠다이지만 실질적 대안의 부재 속에서, 지역 간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어 왔다. 여기에는 수도권 국회의원이 대략 6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실질적인 법적 근거를 갖춘 지역정책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비수도권 지역에서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진정한 균형발전이 불가능하였다. 이제 담론 수준을 넘어서서 한 지역이 아닌 국가균형발전의 실질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지도자가 몰락하는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있는데, 많은 경우 권력의 최 정점에 이르렀을 때 자기절제의 부족과 타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의 부족이 결국 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충북의 전임지사가 칼국수를 즐겨먹는 이유가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함이라는 자기절제는 존경할만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생애는 한 편의 드라마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파란만장하다. 초등졸업 후 소년공,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패스, 4년 장학생으로 법과대학에 입학 및 졸업 후 고시패스, 판검사의 꽃길을 마다하고 인권변호사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계속 승승장구하였으나, 가난하고 힘든 시절에 함께 했던 많은 사회적 약자들과의 공감을 끝까지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대통령이 끝난 후 오래 동안 국민들의 기억에 남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