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 청소년들이 자신의 용감함을 과시하기 위해 유행했던 치킨게임이 있다. 일명 블라인드 런 게임(blind run game)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마주보는 차가 출발선에서 전속력으로 상대 차를 향해 돌진하는데 먼저 핸들을 꺽어 피하는 자가 겁쟁이(치킨)가 되고 끝까지 달리는 자가 승자로 용감함의 영예를 누리는 게임이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게임이지만 얻는 것이라고는 고작 용감함 밖에 없는 어처구니가 없는 게임이다. 이론적으로 이성적인 사람은 게임 자체가 양측의 손실이 분명한다는 점에서 핸들을 빨리 꺽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기업 간 경쟁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대기업은 경쟁사를 이기려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출혈경쟁을 하는데, 결국 자금동원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게임에서 항복하고 대기업은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시장진입 장벽을 높게 쌓고 신규 기업의 진입을 억제한다. 치킨게임은 기업 간 경쟁에서 대기업이 가끔 사용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최근 국가를 상대로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트럼프 발 관세전쟁이다. 기업 간 치킨게임은 그 피해가 특정 분야에 머무르지만, 관세를 무기로 하는 국가 간 치킨게임은 그 피해가 미국 뿐 아니라 세계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어서 무모한 전략이다.
1930년 미국은 세계대공황의 단초로 알려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제정·공표하였는데, 미국 내 농업 및 경공업을 보호하기 위해 취약산업에는 평균 59%를, 모든 수입품에는 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유럽 및 기타 세계 국가들은 보복관세로 맞대응하였으며, 그 결과는 참혹하였다. 세계 무역량은 급감하였고, 이는 생산 및 소득의 감소로 이어지고 소비의 위축은 경기침체를 가속화하고 대량의 실업이 생기면서 세계 대공황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미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부과한 고관세가 대공황 기간 중 미국의 국민소득을 약 26% 감소, 실업률을 거의 30% 수준까지 치솟게 하였을 뿐 아니라, 세계경제 공황상태를 유발한 것이다. 결국 공황의 결과 나치가 집권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비용을 치르고서야 세계경제를 회복시킨 역사를 가지고 있다.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자유무역이 국가 간 불균등발전을 가져오지만,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최선의 대안임이 입증되었다. 1995년 WTO의 창설을 통하여 자유무역을 위한 실질적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2001년에는 미국의 적극적 권유로 중국이 WTO에 가입하여 세계경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의 주도로 다시 보호무역의 과거로 회귀하려고 한다.
현재 미국이 사용하려는 관세전쟁의 방아쇠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인접국가의 피해를 강요하는 전형적인 근린궁핍화정책(Beggar-thy-neighbour policy)의 사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대국이 자신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 및 기타 행정 등의 무역장벽을 동원하여 보호무역정책을 하고 여타국도 이에 대응하여 대외무역에 빗장을 걸어둔다면 세계경제는 다시 침체의 길로 갈 것이 자명하다. 특히 한국과 같이 대외의존도가 80%에 이르는 국가는 세계 교역규모의 위축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매우 클 것이다. 문제는 미국도 동일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2~3%의 평균 관세율에서 1930년대 이후 최대수준인 17%대의 보편관세가 부과된다면 미국의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크게 높아지는 소위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관세전쟁에서 진정한 승자는 없으며, 단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그나마 성공한 전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