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다.
지난 10월 10일 오후 8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가 선정되었다는 뉴스에 전 국민은 기쁨과 충격으로 들썩였다. 드디어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벨상 수상국가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무엇이 한강 작가의 작품세계가 노벨상이 이르게 하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나흘 후 14일 노벨위원회에서는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대런 아세모글루 MIT 교수, 사이먼 존슨 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학 교수를 선정·발표하였다.
노벨위원회는 한강 작가의 선정이유로 작가의 작품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서정적 산문"이라는 점을 들었으며, 경제학상은 "국가 간 소득 격차를 줄이는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제도의 중요성 입증"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3명의 경제학자는 경제학계에서는 신제도주의 경제학자로 불린다. 전통적인 주류경제학에서는 경제변수를 중심으로 시장에서의 희소한 자원에 대한 배분을 연구하지만, 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은 비경제적 요인, 즉 정치이념 및 제도, 사회관습, 문화 등이 실제로는 가격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힘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입장에 서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아세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국가의 발전과 쇠락을 분석하였는데, 그 핵심 요인으로 제도를 꼽았다. 즉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를 가진 나라는 법치와 경제적 자유를 존중하며 다수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여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는 반면, 배타적 제도(exclusive institutions)를 가진 나라는 소수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며 다수의 기회를 억압하여 국가의 장기적 번영을 저해한다고 분석하여 제도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특히 인간이 변화시킬 수 없는 자연·지리적 환경에 의해 발전이 좌우된다는 주장은 일종의 운명론적 주장이나, 제도는 인간의 축적된 지식과 지혜의 산물로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국가의지가 경제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그리하여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어느 정도 경제가 성숙한 나라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궤를 같이한다고 주장한다.
한강작가의 대표적인 3편의 작품,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어두운 과거역사의 흔적 가운데 배타적 제도가 가지는 폭력과 억압 속에서, 힘없고 가녀린 주인공을 통해 사회적 이념 및 국가가 가했던 폭력과 고통을 내재화하는 산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가졌던 포용적 제도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강 작가가 왜곡된 역사관을 가졌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제주 4·3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은 아직 역사해석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엄연히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후 한국은 민주화과정, 개방화를 통한 많은 포용적 제도를 정착시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낸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독일이 아직도 아우슈비츠를 투명할 정도로 공개하는 이유는 다시는 과거 나치의 역사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일 OECD는 2023년 주요국의 잠재성장률을 발표하였는데, 한국은 2.0%로 경제대국인 미국 2.1%보다 낮은 수준이며, 머잖아 1%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극 초저출산으로 인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기술혁신 의지·사회 이동성의 증진·공정한 기회보장 등으로 결정되는 생산성의 정체 때문이다.
3인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저성장의 늪을 벗어나는 길로 포용적 제도의 정착을 제안한다. 지금 우리는 우리사회의 포용의 넓이와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할 때다.